영혼을 위한 강원도 모터사이클 여행
주천강의 여름은 적막하다. 강가의 산들은 검푸르게 육중하고, 연청빛 하늘에는 흰구름이 낮게 떴다. 한여름의 아스팔트길이 하얗게 작열하고, 길가의 금계국은 샛노랑으로 쨍하다. 길에도 들에도 인적이란 드물고, 여름 강은 멈춘 듯 흘러간다. 분지에 가득한 정적 위로 멀리 산비둘기 소리가 퍼진다. 강변에 선 미루나무들이 이따금 바람에 일렁인다.
치악산 북동쪽 끝자락 安興은 주천강의 최상류다. 매화산, 백덕산, 청태산에 안긴 분지는 깊고 아늑하다. 서강에 합류하는 주천강이 안흥 분지를 동서로 양분하며 흐른다. 아늑한 땅에 마르지 않는 강이 흐르는 이곳의 풍토가 안흥이라는 이름을 품게 했다.
강둑에서 미루나무 예닐곱 그루가 바람을 받는다. 가로수로 줄지어 섰던 시절을 지나 벚나무와 복자기나무에 자리를 내주는 세월을 품고 선 나무들이다.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잔바람에 떤다. 미루나무 아래서 한낮의 강물은 어른어른 반짝인다.
미루나무는 바깥으로 포용하는 나무가 아니라 위로 지향하는 나무다. 미루나무는 외부로 사방으로 가지를 펼치지 않고 짧은 가지를 몸통에 바짝 붙인다. 그렇게 몸통에 붙은 가지는 줄기와 나란히 위로 뻗는다. 줄기와 가지가 일방으로 위를 지향하는 미루나무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기둥처럼 보인다. 가지를 펼쳐 주위를 살피며 사려 깊게 사람이나 집들을 품는 것은 미루나무의 일이 아니다. 자신의 중심으로 가지들을 수습해서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것이 미루나무의 속성이다. 미루나무 중에는 굽은 나무가 없고, 기운 나무도 없다. 미루나무가 기울었다면 그건 죽은 나무다.
높고 곧게 수직으로 자란다고 해서 미루나무가 자신을 무겁고 완강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 미루나무는 목질이 가볍고 연해서 부드러운 바람에도 잘 휘어지고 일렁인다. 잎자루는 길고 나긋해서 가벼운 바람에도 이파리들이 쉽게 흔들리고 떨린다. 휘어지고 일렁이는 게 미루나무가 바람을 대하는 방식이고, 그 바람에 실어 보내는 혼잣말이 속사연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미루나무는 지향시킨 키만큼 휘어지면서 세상의 아픔을 견디고, 돋우어 낸 이파리들만큼 떨면서 내면의 무게를 감당한다.
화가 장욱진은 1978년에 ‘가로수’를 그렸다. 계절은 여름이다. 커다란 진청색 나무 네 그루가 화면에 가득하다. 붉은색 황토 위에 선 나무들은 부드러운 바람을 받아 살짝 뒤로 휘어졌고, 나무 아래에선 아버지, 어머니, 어린 딸, 강아지, 황소가 바람을 마주하고 걸어간다. 나무 꼭대기에는 여섯 채의 작은 집들이 까치집인 듯 올라앉았고, 그 위 하늘에는 연홍의 해가 점처럼 떠있다. 그리고는 투명한 연둣빛 여백뿐이다. 심각하고 모난 데라고는 없는, 편안하고 상쾌한 느낌이다. 가벼운 옷차림의 세 사람조차 얼굴을 들어 바람을 즐긴다. 경쾌하고 산뜻하고 행복하다.
화가는 이 나무가 무슨 나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화가가 바라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꿈꿔보는 행복한 삶을 그렸으니 이 세상의 나무가 아닐 수도 있다. 이 나무는 짙푸른 생명으로 싱싱한 나무, 사람이 사는 집들을 받쳐주는 건장한 나무, 길을 가는 사람과 동반하는 정겨운 나무, 붉은 황토 연둣빛 하늘 불어오는 바람과 더불어 자연이 되는 나무다.
밝히지 않았어도 이 나무는 미루나무다. 1978년이고 가로수니까. 가로수가 선 길이 황톳길 신작로니까. 가지 없는 줄기에 잎들이 역삼각으로 무성하니까. 그 이파리들이 여름 하늘에 빈틈없는 짙푸름으로 두텁게 걸렸으니까. 한가로운 바람결에 결대로 누웠으니까. 무엇보다 여름 주천강의 미루나무들이 꼭 그러하니까. 그리고, 미루나무는 꿈, 동경, 이상, 저기 어딘가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상징하니까.
여름의 한가운데 선 주천강 미루나무를 본다. 미루나무는 단순한 나무다. 정적 속에 다만 하나의 기둥으로 섰다. 미루나무는 역설적 나무다. 잔바람에 떠는 이파리들은 오히려 정적의 긴장을 온몸으로 전해준다. 미루나무는 묵언으로 말하는 나무다. 반짝이는 강물 위에서 반짝이는 이파리들이 전하려는 말들은 팔랑거리는 잎이 아니라 분지 가득한 고요 속에 선 산들과 흘러가는 강물과 백로가 나는 하늘이 전한다.
장욱진의 ‘가로수’를 다시 본다. 화면 가득한 네 그루의 커다란 미루나무는 화가가 지녔던 꿈과 이상의 표상은 아닌 것 같다. 화가의 꿈과 이상이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가볍고, 그래서 편안하고 걱정 없는 행복한 삶이라면 커다랗고 두터운 미루나무는 그 꿈과 이상의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그것을 위한 배경일 것 같다. ‘가로수’가 전하는 단순하고, 가볍고, 걱정 없고, 행복하고, 자연스러운 삶에 대한 꿈은 미루나무 아래의 작은 사람들, 강아지, 황소, 미루나무 위의 작은 집들과 한 점의 붉은 해에 담긴 듯하다. 얇게 깔린 황톳길과 연연두 하늘의 여백에 은유된 듯하다. 꿈과 이상은 대개 두텁고 육중한 기반 위에서 투명하고 가볍게 간직된다.
미루나무는 쓸모가 적다고 한다. 목재로는 약하고, 조경수로는 부담스럽고, 유실수로는 열매를 맺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두 미루나무가 있어 한층 깊어지는 여름의 고요와 미루나무가 있어 드러나는 삶의 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