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과 관능: 4월의 芳林과 桂村

영혼을 위한 강원도 모터사이클 여행

by 고이지

개나리가 지고, 진달래가 지고, 벚꽃도 모두 졌다. 꽃들이 지는 새에 새순이 돋고, 새순이 이파리가 되고, 이파리는 잎새가 되었다. 새잎들은 연둣빛이어서 봄이 깊어지는 동안 검은 산은 천지에 연둣빛이 되었다.


42번 국도는 서해의 인천항과 동해의 동해항을 연결하는 325 km의 도로다. 인천항에서 원주까지의 경기도 구간 175 km는 산업도로의 모습이고, 원주부터 동해항까지의 강원도 구간 150 km는 태백산맥을 넘는 산간도로다. 이 길의 산악구간이 시작되는 곳에 횡성군 안흥면의 전재와 평창군 방림면의 방림리 계촌리가 있다.


전재를 넘는 길가의 느티나무에 잎들이 가득하다. 연둣빛 잎새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아침의 햇빛은 잎들을 투과한다. 빛을 받아들이는 잎들의 연두는 맑고 투명하다. 꽃을 틔우기 직전의 이팝나무 잎들도 가볍고 투명한 연둣빛이다.


전재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저 아래 아득한 계곡에 아침빛을 담은 저수지가 가물거린다. 저수지부터 고갯마루까지는 길고 깊은 계곡이 이어지고, 계곡 양편의 산사면은 연둣빛 참나무숲이다. 바람이 스치는 참나무숲은 연노랑이 비치는 연연두의 물결이고, 연연두 물결은 바람을 따라 숨결처럼 넘실거린다.


연두는 밝고 선명하다. 연두는 가볍고 투명하다. 환하고 경쾌하고 유연하다. 환하고 가벼워서 연두는 땅을 딛지 않고 공중으로 떠오른다. 환함의 절정에 이른 4월의 연두는 나뭇잎을 밝히고, 숲을 밝히고, 온 산천을 환히 밝힌다. 사람의 눈을 밝히고, 마음을 밝히고, 몸조차 말갛게 밝힌다. 환하고 밝은 연두는 그래서 연두색이 아니라 연둣빛이라야 맞다.


연두에서는 앳됨이 묻어난다. 연두는 어리고 여린 색이다. 연두에서는 망설임도 느껴진다. 연두는 노랑과 초록 사이에서 떨고 있는 미완의 색이다. 연두에서는 또 애잔함도 배어난다. 가볍고 투명한 연두는 부서질까 조마조마하다. 여리고 보드라운 것들은 고운 슬픔을 부른다. 연두의 아름다움 속에는 은연한 애닯음이 어른거린다.


연두는 魅惑적이다. 사람을 홀린다. 땅을 딛지 않는 빛의 매력으로 마음을 사로잡아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한다. 연두에는 무거움이나 굳건함이 없다. 한숨과 한탄도 없다. 걱정과 우울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한과 제약도 없고, 불행과 불우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연두는 비현실의 빛이고 몽환의 색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 가서 닿을 수 없는 것, 비현실성과 꿈에 매혹된다. 사람들이 연두에 마음을 빼앗기는 건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어 하는 헛됨이지만, 그렇더라도 봄마다 연두에 홀리는 증상에 끝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평창군 방림면의 방림리와 계촌리는 42번 국도변의 산간 마을들이다. 芳林은 꽃숲이고 桂村은 계수나무 마을이다. 4월 하순이 되면 방림과 계촌의 계곡과 산비얄에서는 귀룽나무가 꽃을 피운다. 꽃을 피우지 않은 귀룽나무는 누구도 알아볼 길이 없지만, 꽃을 피우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귀룽나무는 키가 크고 가지와 잎이 풍성하다. 키는 15m까지 자라고, 사방으로 뻗는 가지는 길고 유연하다. 길고 유연한 가지들이 풍성하게 아래로 휘어지면 큰 키를 지탱하던 줄기는 가지와 잎들에 가려진다. 그래서 다 자란 나무가 잎을 모두 피우면 귀룽나무는 공중에서 연둣빛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 모양이 된다. 4월이 되면, 늘어진 가지마다 우윳빛 꽃들이 포도송이 같은 타래로 피어난다. 꽃타래들은 한없이 피어나서 가지와 잎을 가린다. 꽃을 모두 피운 귀룽나무는 우윳빛 밀가루가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같다.


계곡과 산비얄의 귀룽나무들은 대개 서너 그루씩 때로는 예닐곱 그루씩 무리 지어 서있다. 그 나무들은 저절로 생겨나서 큰 것들이다. 홀로 선 귀룽나무들도 있는데 그런 나무들은 대부분 마을이나 집 가까이 있다. 그 나무들은 사람이 돌보고 가꾼 것들이다. 무리 지어 꽃을 피운 귀룽나무는 서너 그루만으로도 제법 꽃숲의 느낌을 내고, 귀룽나무 무리들이 연달아 서면 제대로 된 꽃숲을 이룬다. 귀룽나무꽃이 필 무렵 방림 계곡은 꽃숲이 된다.


바람이 분다. 연한 바람이다. 귀룽나무가 바람의 결을 탄다. 가지가 일렁이고 꽃타래가 한들거린다. 한가롭게 나부끼는 린넨처럼 귀룽나무는 여유롭고 능란하다. 날 선 에고를 놓아 보낸 성숙함으로 저항 없이 바람을 수용한다. 받아들인 바람을 결 대로 풀어내서 결마다 가벼운 자아 한 가지 한 타래씩을 얹는다. 귀룽나무는 꽃향기도 엷고 원만하게 퍼진다. 은은한 바람에 실린 향기는 그저 바람인 듯 언뜻 향기인 듯 스치고 지나간다.


귀룽나무는 관능적이다. 급할 것 없는 바람에 흔들리는 귀룽나무는 느릿하고 우아하게 매력적이다. 관능적인 것은 고혹적이거나 뇌쇄적인 것처럼 지나치지 않다. 다급하지도 절박하지도 않다. 흔들리지만 위험하거나 불안정하지 않다. 매력적이지만 노골적이거나 음습하지 않다. 자의식이 있지만 들이밀지 않고, 원하는 것이 있지만 찾아 헤매지 않는다. 귀룽나무의 관능에는 삶을 살아낸 연륜과 경험이 있다. 시간을 통과하면서 길든 원숙함과 충만함이 있다. 귀룽나무는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 헤어날 수 없이 은근하게 잡아당긴다.


전재 아래 빈 들에 돌아와 선다. 은청색 밀밭에 바람이 스치고 주홍의 해는 산등성이를 너머 간다. 석양의 하늘에 하얀 반달이 떴고, 반달 너머로는 긴 비행운이 걸렸다. 두 마리의 오리가 동쪽 하늘로 날아간다.


어둠이 내린다. 어둠은 밀밭을 지우고 산 그림자를 지운다. 반달을 지우고 비행운도 지운다. 오리들도 이미 다 날아갔다. 빈 들이 어둠에 섞인다. 연두도 귀룽나무도 이제는 어둠과 함께 고요해졌을 것이다. 깊어져 가는 밤을 따라 멀리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이어진다. 개구리 소리에 고요는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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