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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야 Sep 08. 2020

건조기가 구워낸 뽀송한 빨래

소소하디 소소한 일상

여름날의 유레카


건조기 한 대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 건조기를 사용하고 나서야 그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레카!' 장마로 일상이 온통 습하고 축축한 이라면, 동네 빨래방에서 우울하고 축축한 마음을 빠삭뽀송하게 말려보시길 권한다.


유난히 길었던 이번 여름 장마는 몸을 처지게 만들고, 새로 빤 옷을 기분 좋게 걸치는 일상마저 앗아갔다. 장마가 점점 길어지다 보니, 빨래가 코끝에 닿는 순간 달콤하고 보송한 내음이 아니라, 축축한 빨래통에서 마구잡이로 꺼내 입은 듯한 퀘퀘한 냄새가 났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옷의 섬유 깊숙한 곳에 퀘퀘한 냄새가 스며들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평소보다 호들갑떨며 '덜 마른 옷을 입고 나왔더니 냄새 난다'며 먼저 선빵(?)을 날리는 수밖에.


여름의 막바지에, 난생 처음 큰맘 먹고 '빨래방'이란 곳을 가 돈을 써보았다. 1주일에 세탁, 건조까지 해서 7천 원 안팎의 돈을 들여야 하기에 결코 저렴한 비용은 아니었지만, 1주일 삶의 질을 높인다고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건조기에서 경쾌한 알람이 울리고 무거운 금속 재질의 문을 열어젖히자, 기분 좋은 열기가 훅 밀려왔다. 두꺼운 수건부터 잘 말랐는지 손으로 만져 보았다. 마치 푹푹 삶아낸 빨래를 옥상 위에 널어 두었다가, 적당한 시간에 수확(?)한 것처럼 아주 만족스러운 촉감이다.



갓 구워낸(?) 빨래가 주는 행복감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빨래방 사랑은 근 한 달간 지속되고 있다. 빨랫감을 1주일간 잘 모았다가 양껏 빨래방에 가져가서 건조하면, 널고 걷는 수고를 줄일 수 있어서 노동량이 꽤 준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은 건조기에서 '아 뜨거 뜨거'하며 빨래를 건져올릴 때 아닐까? 갓 구워 나온 빵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포만감마저 들 지경이다. 뜨거운 빨래를 손끝으로 통통 튀겨내며 접고, 각자의 위치를 찾아주면 오늘의 빨래는 끝!


때로는 빵이 아닌 빨래가 일상에 포만감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이번 주도 갓 구워낸 빨래를 수확하러 빨래방에 가려 한다.


얼른 옥상에 빨래를 말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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