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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남자

by Om asatoma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많은 남자를 만나 본 것도 아니면서 무얼 그렇게 많이 안다고 아는 척을 했다. 그래서 기대치가 언제나 낮았다. 나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특별한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삶에 안개처럼 끼어 있었다.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어서 장기간의 만남은 가지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나름 쿨한 구석이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남의 시간이 지속될수록 부담스러워지는 스킨십도 장기간의 연애를 못하게 하는 데 한몫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세워놓은 나만의 벽을 허물고 들어오려는 시도가 무척 부담스러웠던 듯하다.

나도 나를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은데, 아니,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그저 덮어두고 싶은 부분들이 있는데, 이성관계도 인간관계의 일종이기에 한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 인해 내가 지내온 나의 내밀한 역사를 뜻하지 않게 개방해야 하는 순간들이 생겨났고, 그럴 때마다 다른 핑계를 대며 만남을 그만두었다. 그의 외모나 성격이나 직업이나 자주 틀리는 맞춤법이나 옷 입는 스타일이나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혼자 생각했지만, 사실 무의식 속에는 그가 파고들어오려고 하는 나의 내면이, 세상을 향해 문을 열 준비가 아직 덜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복잡했다. 뭐가 복잡했다. 배가 고파 음식을 선택할 때도 건강에 미칠 영향과, 알레르기와, 지불해야 할 비용과 맛과 포만감 등등 생각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았고, 옷을 하나 고를 때도 어디에서 입을 것인지, 무엇할 때 입을 것인지, 어울리는 옷이 있는지, 어떻게 보일지, 세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결국은 금액에서 멈추게 되는. 나 개인의 일상도 그렇지만, 가족관계로 한 걸음 더 나가게 되면 이건 뭐,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지 못할 복잡한 것들이 엉켜있다.

다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볍게 산다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가볍다는 뜻을 진중하지 못하고, 사려 깊지 못하고, 제 멋대로인 것과 동일시했다. 삶이 어떻게 가볍게 살아지는 것인지 상상의 범위에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 또는 삶이라는 단어 앞에 가볍다는 수식어가 붙게 되면 그건 피수식어를 비난하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라고 생각해온 듯하다.

그는 달랐다. 가벼운 사람이었다. 가볍게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부러웠다. 가벼운 사람을 부러워하다니! 말과 행동이 언제나 무거운 내가, 가벼운 사람을 부러워하다니!

그라고 해서 어떤 선택 앞에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내는 과정이 매우 단순했고, 선택 이후에도 미련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사고의 과정이 깔끔했다. 놀라웠다. 저렇게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어쩌면 일종의 자신감의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불쾌하게 하지 않을 정도의, 오히려 배려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 만큼의 매너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타자의 반응에는 연연하지 않는 모습.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최선일 것이라는 믿음.

부족감 때문에 스스로를 개방하지 않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신비롭게 생각하며 다가갈 수 없는 듯 대했지만 그에게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뿐 나로 인해서 자기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다시 부여하지는 않았다. 외부의 어떤 요소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속을 들여다본 적은 없지만 심리적인 해부를 해 보아도 무엇에 대해 꼬인 것이 없는, 온화한 직선들만 존재할 것만 같았다. 존재할 수도 있는 이면의 어둠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 감탄하기를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대화를 하다 보면 이렇게 단순하게 살 수도 있는 거구나를 알게 되는, 내가 얼마나 의미 없이 복잡한 사람인가를 알게 해 주는, 내가 속한 삶의 거대한 테두리가 마치 어떤 마녀의 주문에 의해 세워진 것은 아닐까를 한 번쯤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멋있었다. 빛났다. 그의 삶이 그랬다. 그래서 더 그와 가까워질 수 없었고, 그를 붙잡을 수도 없었고, 그에게 잡힐 수도 없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아서. 가볍게 산다는 것의 동의어가 자유롭게 산다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를 알게 되었다. 당장은 그의 삶의 방식을 흉내 낼 수도 없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살고 싶다는 꿈만 심어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멀어져 간 사람.


그런 맛이다.
와인이 이럴 수도 있구나, 이렇게도 가벼울 수 있구나,
그런데 그 가벼움이 날리는 가벼움이 아니라 자유로운 가벼움이라는.
산미, 탄산, 탄닌.. 없지는 않지만 딱 적당할 만큼만 지니고 있는,
게다가 빛깔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포도 과즙의 그 싱그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남자의 따뜻함처럼 싱그럽다.
과실주에 더 가까울 수도 있는,
알코올에 약한 아가씨를 위한 와인이라고 할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도 않고, 약간의 단맛이 뒤를 받치고 있다.
거절 의사를 밝혔을 때 질척이지 않고 웃으며 행복을 빌어주고 떠나는 나이스한 남자 같은.
삶을 함부로 사는 것도 아니면서 무엇에 얽매이는 것은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냥 그런 남자에 비유할 수 있는 맛.

(실제로는 만나본 적 없는......!)

무똥 까데 칸 리미티드 에디션 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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