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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Aug 21. 2021

찰나

그림 같은 산 가득 담긴 거실 끝 커다란 창을 등지고

멀리 펼쳐진 바다를 향해 길게 놓은 아이보리 세라믹 테이블 위

전문가용 수채 물감이 색색이 있는 팔레트

물통에 붓을 씻어 곱게 놓인 수건에 닦고

연두색 물감을 찍으려던 찰나

양갈래로 곱게 땋은 머리를 한 딸아이가

엄마,라고 낮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반투명한 화이트 시스루 커튼 사이

줄 하나에 매달려 외창을 닦고 있던 이와 눈이 마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되지 않을 고운 모습을 한 그 청년 눈이 마주치고

아무 말도 해줄 수 없고 아무 표정도 지을 수 없던 그 여자 그저 고개 숙인채

늦여름의 폭우는 더욱 거세어지고

에어컨 실외기 소리도 빗소리에 묻히고

캔버스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에 딸아이는 집에도 비가 온다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청년이 든 와이퍼는 빠르게 아래위로 움직이고

여자는 눈을 감은 채 차마 다시 뜨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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