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산이 가득 담긴 거실 끝 커다란 창을 등지고
멀리 펼쳐진 바다를 향해 길게 놓은 아이보리 세라믹 테이블 위
전문가용 수채 물감이 색색이 있는 팔레트
물통에 붓을 씻어 곱게 놓인 수건에 닦고
연두색 물감을 찍으려던 찰나
양갈래로 곱게 땋은 머리를 한 딸아이가
엄마,라고 낮게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반투명한 화이트 시스루 커튼 사이
줄 하나에 매달려 외창을 닦고 있던 이와 눈이 마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되지 않을 고운 모습을 한 그 청년과 눈이 마주치고
아무 말도 해줄 수 없고 아무 표정도 지을 수 없던 그 여자 그저 고개 숙인채
늦여름의 폭우는 더욱 거세어지고
에어컨 실외기 소리도 빗소리에 묻히고
캔버스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에 딸아이는 집에도 비가 온다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청년이 든 와이퍼는 빠르게 아래위로 움직이고
여자는 눈을 감은 채 차마 다시 뜨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