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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남자는 여자를 잘 알거나

by Om asat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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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남자라 여자를 잘 알거나 글 쓰는 사람이라 글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거라고 혼자 웃었다. 어느 쪽이든 그는 떠나려는 여자들을 많이 잡아보지 않았을까, 떠나려는 사람의 발걸음을 여럿 돌려보지 않았을까.


보름 만에 뵈었는데 안부를 여쭙기도 전에 뵙자마자 글이라는 게 잘 써질 때도 있고, 잘 안 써질 때도 있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마치 무당들이 접신할 때처럼 어느 순간 멋진 문장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나게 된다고, 기성 작가들도 그런 작품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그대로 무장이 해제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아셨지.. 야반도주하려다 들킨 사람처럼 머쓱하게 웃어버렸다.


특별한 감성이 있어서도 아니고, 시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시인이 되고 싶어서도 아닌, 나같이 헐벗은 사람이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의 언저리라서 한 발 걸쳐보고 싶었을 뿐이다. 세련된 접시 옆으로 놓인 생화를 배경으로 이름도 모르는 요리들을 전시할 수도 없고, 조명이 근사한 곳은 백화점 화장실이 아닌 이상 자고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공간이고, 무릎이 닳을 만큼 걸었으니 일등석 사진이나 공항 보안 검색대 트레이에 색을 맞추어 샤넬에서 만든 물건들을 올리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으므로 꼭 그렇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은 아닐지라도 혼자 즐기기에도 악기도 운동도 그림도 일정한 비용과 공간과 시간이 발생하는데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핸드폰 메모장만 있어도 언제든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니 이보다 매력적인 취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불손하게 접근해서 그러한가. 문장이 오지 않는다. 무기라고는 헐벗음 하나인데 자기 위로의 글만큼 따분한 글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한 문장도 오지 않는다. 노력해서 되는 거라면 볼링을 배울 때 하루 열 게임 이상 했던 것처럼 몸을 갈아 연습할 텐데 글이라는 게 사랑처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재능 없음이 죄는 아니나 다른 사람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 것은, 어떤 기대를 안기고 책임지지도 못할 마음을 일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분의 기대를 물리고 싶었다. 더 큰 잘못을 하기 전에, 이렇게 글이 써지지 않아 몸을 비트는 시간을 들키기 전에, 더 큰 실망을 드리기 전에 이쯤에서 나를 접어주시라 말씀드리려 비장하게 약속장소로 갔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그리 말씀하시니 이건 뭐, 내 까짓 게 뭐라고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겠냐며, 이건 이미 저질러진 사랑 같은 거라고, 이미 바다로 내던져졌으며, 이미 바람을 타서 내가 어디에 놓일 것인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갈밭에라도 얼른 내려앉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가는 곳을 모르고 부유하는 이 막연함을 나는 또 견뎌야 한다. 익숙하기는 하다. 이렇게 떠도는 것.


2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동심,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봐버렸다. 발. 선생님의 작고 뽀얗고 아기 같은 발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기골이 장대하여 발도 크고, 맨발로 걸어야만 하는 나는 발도 이쁘지가 않는데 아마 그래서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타고난, 어쩔 수 없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가 삶의 숙제라 생각한다.

-지인과 말씀 중에 양말을 벗으실 일이 있었다.


3

어쩔 수 없는 것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

저항 없이 빨리 받아들이는 자가 삶의 승자가 된다.

거부하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순응, 순응은 포기나 체념이나 단념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운명의 등에 올라타는 것,

운명의 등에 올라타 자유를 얻는 것,

신의 뜻을 따르는 것.

4

내가 극렬히 거부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필 때이다.

자유를 찾을 것인가,

더욱 견고한 벽을 쌓아 올릴 것인가_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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