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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 asatoma Sep 30. 2024

또 잡담. 빨강 코팅 목장갑.

日記

딸아이를 두고 남자를 만나러 왔다. 정확히는 위로 같은 게 필요해서 남자를 보러 왔다. 더 정확히는 그 남자가 내려주는 차를 마시러 왔다. 드립 커피와 벨로아 초코라테 중에 무얼 마실까 고민하다가 충동적으로 말차라테를 주문했는데 역시 우유를 베이스로 한 음료는 나의 취향이 아니다.


취향이라니, 내가 쓰는 모든 단어들 중에 나와의 거리가 가장 멀고 어색한 말이다. 취향이라니, 나에게 취향이라니.

두시가 되어서야 허기를 느꼈고, 농장에서 내려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하나 샀다. 볶은 김치가 들어간 삼각김밥이었는데 기대치 않게 국산 배추와 국산 고춧가루를 쓴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일을 쉬면서 많이 걷자는 뜻으로 구입한 트레킹화는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에어컨을 틀지 않으려는 고집으로 등에서는 땀이 흘렀으며 때마침 자클린의 눈물이 흘러나왔고 삼각김밥의 반쪽은 잘 먹었으나 나머지 반쪽은 비닐이 벗겨지지 않은 채 마치 와인 코르크 마개가 와인 병에 빠져버린 꼴로 우스꽝스럽게 기어이 먹고 말겠다는 모습으로 한 손으로 먹으며 운전을 했다.    


나에게 취향은 그 정도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최소한으로만 충족시키면 되는 것.


빨간색 코팅 장갑을 끼고 두고랑 가득하던 잡초를 정리했다. 무엇을 심으실지는 모르겠다. 심어도 아무도 먹지 않게 될 텐데 시간도 버리고 몸도 버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죄로 때로 잡초를 정리하는 일 정도로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   


오늘 가을볕에 빨강 코팅 작업용 장갑을 낀 손으로 한때는 그림을 그렸으며 또 한 때는 서예를 했고, 첼로를 켰고, 골프채를 잡았고, 볼링을 할 때는 하루에 열 게임씩 했다. 볼펜 하나를 다 써버릴 때의 희열을 즐기는 수험생이기도 했고 학생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한 번 손을 대면 그것의 끝을 볼 때까지 낮밤을 가리지 않았다.  


작업용 빨강 코팅 장갑 안에 있었던 그 손가락이 유난히 가늘고 길어 손에서 우수를 읽은 이들은 한 번 잡아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았다. 예술을 할 것 같은 손이라고들 했는데 뿌리로부터 가장 가까운 쪽의 줄기를 한 움큼씩 움켜쥐고 뽑아내고는 풀무더기 위로 올리고 연이어 다음 줄의 잡초를 또 움켜쥐고 이미 뽑아놓은 잡초 무더기의 가장 위로 올려가면서 돌돌돌 말아 몸체보다 큰 잡초무더기를 이루며 농사짓는 시집이었다면 사랑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왔건 결국은 빨간 코팅장갑을 끼고 하늘 파란 가을볕 아래 지렁이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잡초를 뽑아 눈 굴리듯 잡초더미를 굴리고 있다며 자조했는데, 지금 와 보니 결국은 빨강 목장갑을 벗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드립커피를 마셨어야 한다며 녹차라테를 주문한 것을 후회하면서 주문한 음료보다 물을 훨씬 더 많이 마시고 있다.     


요즘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이러한 삶을 예상했기에 이렇게 살게 되는 것인가, 이렇게 흘러갈 것을 직관적으로 미리 아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인가 하는 지점이다. 사람의 삶이 생각대로 흘러간다고들 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단순히 싫다는 표현도 그건 어렵겠다며 표현하면서 잠시라도 부정적인 생각이 내게 스밀 공간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막연히 예상되는 모습들이 있었다. 기억력이 허락하는 한의 초등학교 시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어떤 흐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의 생각 때문에 이렇게 흘러온 것인지 이러한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인지 굳이 구분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직관, 직관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없었다. 예기치 못하게 일어난 일이 없었다. 사실은 그 당시에 당황한 척을 한 적도 있지만 거의 모두는 어느 정도 예견했었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일들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내가 어느 동떨어진 지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지금 앉아있는 이 커피숍이 있는 장소는 내가 어렸을 때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가 이전을 하게 되어 다른 학교에 잠시 다니게 되었는데 그 잠시의 인연을 맺은 초등학교 바로 길 건너 주택가에 있다. 나는 이 길을 초등학교 3학년 때 걸었다. 낯선 학교로 등교하면서 완전한 이방인의 생활을 했었다. 그 초등학교의 3학년 1반 아이들은 내가 잠시 머물다 갈 존재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고, 양복을 입고 체구가 자그마했던 사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담임선생님 역시 나를 옆집 애기 엄마가 귀가가 늦어 옆집 아이를 잠시 맡아주는 정도로 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른 시로 이사를 갔음에도 여전히 이 동네를 찾아 차를 마시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그때 가졌던 생각들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무엇이 있다. 유년기를 보냈던 신월동 생활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런 사람이 될 줄 알았고,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있을 줄 알았고,  지금 하고 있는 경험들 지금 갖고 있는 느낌들 생각들 행동들 모두 낯설지가 않다는 것, 이럴 줄 알았다고 하면 누군가 노하여 전혀 예측밖의 상황을 만들어주실까.



앞으로, 앞으로의 상황 또는 일들도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에 때로, 가끔 벼락같이 운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비 말고 톡톡톡 투두둑 타다다닥 떨어지는 비 같은 울음 말고 천둥같이 벼락같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뱉는다. 그리곤 혼자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지 평화로워도 되는지 그들과 관련 없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꿈같은 것을 꾸어도 되는지 안절부절못한다. 그럴 때면 농장에 가서 잡초를 뽑거나 거미줄을 걷어내거나 길 위에 잡초가 자라는 흙더미 같은 것을 치우거나 곰팡이를 닦는다. 오는 길에 이렇게 찻집에 들러 가장 신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한 잔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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