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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 asatoma Nov 13. 2024

샤넬,

무색무취의 방에 갇혀 경계가 지워지려 할 때

우리 동네 술 가게 사장이 추천한 와인을 기대 없이 받아 와 한 모금 했을 때의

의외의 다정한 맛이 다음날 아침을 맞을 수 있게 했다


鬱의 방에 갇혀 동굴 같은 입 속에 虛無가 動할 때

수영강사가 그 순간 나에게 꼭 필요했던 강습을 개별적으로 해주었을 때의

의외의 섬세한 배려가 다음날 아침을 맞을 수 있게 했다


더는, 누구에게도 의외성을 기대할 수 없는 순간이 와버렸을 때

그날 하루를 살린 것은 샤넬, 샤넬이었다


수년 전, 구입해 오래도록 잘 쓴,

화장 붓 없이는 입술에 칠 할 수 없는,

버릴 시기는 이미 지난 낡고 닳은 그러나 그만큼 잘 어울리는 색이 없어 그 품번을 기억하려고 버리지 않고 화장대 구석에 놓아두었던,

퍼스널 컬러 진단사가 여름쿨라이트라 진단을 내려

평생 해본 적 없는 희멀한 핑크 립만 바르고 다녀 한동안 내버려 둔 것조차 잊고 있다가


더는, 더는 스스로 직립할 수 없게 돼버렸을 때

블랙 상 하의를 하고 드라이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에

그 낡은 립스틱을 입술에 문지르고 알았다


한나절 거리에 나가 멀쩡한 사람처럼 걸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붉게 충혈된 눈보다 붉은색의 립스틱이라는 것을.



부풀어 오르다가 부풀어 오르다가

곧 터질 것 같은 홍시보다 붉은 립스틱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처럼 보이게 해 준다는 것을.



가방도 팔고 옷도 팔고 화장품도 파는지는 알 리 없는,

오직 립스틱 파는 회사 샤넬이

근근이 하루를 살려주었다


화장붓 없이 다 닳은 립스틱을 문지른 입술이 아팠지만

그덕에 한나절 충분히 잘 보내었다

 







소비활동을 위한 대단한 合理化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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