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선택은 진정한 용기(연재 4편)
雲谷
살다 보면 누구나 불시에 몰려오는 위기를 경험한다. 건강의 위기, 관계의 파탄, 생계의 무너짐… 그 어느 것도 내 뜻대로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 그럴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고, 뒤로 물러서고 싶어진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허공뿐.
그 지점이 바로 백 척 간두(百尺竿頭)다. 백 척 높이의 장대 끝, 더는 올라갈 수 없는 극한에 선 형국이다.
많은 이들이 그 순간을 ‘끝’이라 여긴다. 그러나 선가(禪家)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백 척 간두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절망의 끝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그 한 걸음은 결코 쉽지 않다. 불확실성과 공포를 온몸으로 껴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마주한 체험
2022년, 팬데믹이 정점에 달했을 무렵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40도에 육박하는 고열, 산소포화도 90%, 이미 30% 진행된 폐 섬유화. 의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그곳에서 입원은 불가능했고, 처방약만 받아 혼자 방 안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숨이 막혀 화장실까지 몇 걸음을 가는 동안에도 수차례 멈춰 서야 했다. 들숨과 날숨이 턱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순간, 처음으로 “정말로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가족도, 응급차도 없는 낯선 땅의 작은방에서 홀로 죽음과 싸우는 시간. 그때의 두려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절망의 순간, 마음속에 떠오른 성경 구절이 있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음을 피하려는 발버둥을 멈추고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자, 기묘하게도 공포가 풀렸다.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가 오히려 삶을 버티는 힘이 된 것이다.
이틀간의 고비를 넘기며 고열과 호흡 곤란을 견뎠고, 3일째 되자 기적처럼 숨이 트이며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오직 감사였다. 내 몸이 나를 버텨주었고, 나는 살아남았다.
*불확실성에 맞서는 결단
그 경험은 내게 백 척 간두의 의미를 새기게 했다. 그것은 단순히 벼랑 끝의 위기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내딛는 결단의 자리였다.
삶은 언제나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도, 그 자리에 멈춰 서는 대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길은 열린다. 신앙의 언어로는 그것을 믿음이라 할 수 있고, 삶의 철학으로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용기라 할 것이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두려움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을 내딛는 행위다. 백 척 간두에서의 용기는 다름 아닌 ‘불확실성에 대한 결단’이다.
*삶의 변곡점에서
“내가 이 길을 가면 실패하지 않을까?”
“모든 걸 잃게 되지 않을까?”
그 질문 앞에서 망설이는 시간은 끝없이 길어진다. 그러나 답은 결국 행동 속에서만 얻어진다.
백 척 간두에서의 한 걸음은, 미지의 허공에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땅을 밟는 행위다.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은 언제나 ‘위기와 결단’이 맞닿아 있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용기를 내어 한 발 내디딘 순간이 오히려 내 삶을 바꾸었다.
백 척 간두에 서 본 자만이 안다. 그 위태로움, 그 두려움, 그리고 그 너머에 기다리는 자유를.....
삶은 때로 우리를 끝까지 몰아붙여 그 한 걸음을 강요한다. 그때 주저하지 않고 내딛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다시 쓰는 시작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은 일상이 되었다. 세계 경제는 요동치고, 자영업자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버티고 있다. 고용, 물가, 전쟁, 기후… 어느 것 하나 예측 가능한 것이 없다. 마치 모두가 백척간두 위에 서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다. 버텨내고, 견디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다.
끝처럼 보이는 자리가 새로운 시작이 되고, 절망의 경계가 희망의 문턱으로 바뀐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고, 아프되 꺾이지 않으며, 끝내 스스로를 믿고 내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알게 될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가장 힘겹게 걸어온 이들에게만 허락된다는 것을.
백 척 간두에서의 한 걸음은 곧 희망의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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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백 척 간두는 우리 모두의 인생에 찾아오는 시험대다. 거기서 한 발 더 내딛는 용기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거는 결단이다.
끝자락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언제나 가장 푸르다. 바람은 차갑지만, 그 바람이 우리를 더욱 단단히 세운다.
두려움의 끝에서 움켜쥔 작은 희망이야말로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끝이라 여겼던 자리가 시작이 되고, 절망의 가장자리가 희망의 문턱이 된다.
백 척 간두의 한 걸음, 그 용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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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5편. 예고
새옹지마(塞翁之馬) ― 화(禍) 속에 숨은 복(福)
인생의 불운과 행운은 늘 맞물려 있다.
실패 속에서 얻는 교훈과, 성공 속에 숨어 있는 위험을 통해 삶의 예측불허함과 지혜를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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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 김정익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 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