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는 그릇

by 운곡

feat.'괜찮다' 뒤에 숨은 서운함


雲谷

마음이 먼저 봄을 앞서간 탓이었을까? 2월 말 잔설이 아직 매서운데, 나는 오리털 파카를 미련 없이 벗어던졌다. 코끝을 베는 칼바람 속에서 생강과 계피를 우려 삼키며 버텼다. 그러다 감기 오면 어쩌려고 하는 아내의 핀잔에 젊은 날 지론을 방패 삼아 “감기란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칠일”이 야라며 오만을 떨었다.
그러나 결이 다른 문밖의 바람은 응달 포수처럼 나를 떨게 했고 그 겨울 끝자락은 뾰족한 고 드럼처럼 나의 오만을 사정없이 찔러 왔다.

나는 언제나 돌덩이 같은 면역력을 자랑하며 감기를 우습게 여겼다. 젊은 날엔 삼사일 누워 있으면 훌훌 털어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보름이 넘도록 나아지는 듯하다가도 다시 몸이 식어 들며 미열과 인후통이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세월이 약이 아니라 칼이었음을 속삭이는 듯했다.

아들 내외가 병문안을 왔다. 며느리의 걱정 어린 눈길에 “가벼운 감기니 걱정 말거라” 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내 시선은 저도 모르게 그들의 빈손을 더듬고 있었다. 평소 ‘마음이 중요하지 형식이 뭐냐’ 던 내가, 그 빈손 하나에 가슴이 더 텅 비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노릇하게 구운 굴비를 내놓았다.
“웬 굴비요?” 어제 며느리가 쿠팡으로 주문했대요. 새벽에 문 앞에 도착했네.”
굴비 한 마리가 접시 위에서 구수한 향을 뿜으며 노릇하게 빛나는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써온 아이들의 정성을, 당장의 빈손으로만 재단했던 나의 좁은 눈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은 늘 먼저 가 있지만, 그것이 닿기 위해서는 때로 손에 잡히는 무언가의 모양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입에 발린 말보다 멋쩍게 내미는 작은 손 하나가 관계의 밀도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도 내 마음을 담을 그릇을 조금 더 곱게 빚어야겠다. ‘괜찮다’ 뒤에 숨은 서운함을 먼저 살피고, ‘고맙다’를 작은 행동으로 먼저 건네는 그런 나이 듦을....
봄은 어쩌면 날씨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정성스레 담는 그 따뜻한 형식 속에서 먼저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