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큐레이터 준비생
part1. 비보
작은 아버지의 비보를 듣게 된 건 업무가 막바지에 달하고 있을 어제였다. 간암 말기. 가족력이 있던 것도 아니다. 말도 안 되게 원인은 무좀약이었다. 간 기능 검사를 하지 않은 채 무리 가는 무좀약을 오랜 기간 복용하신 탓이다. 병원 가서 제때 치료를 받으셨으면 나았으려나.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신 분이다. 이제 생활이 펴질 일만 남으셨었는데, 인생이 이렇게 허망할 수 있다니.
생은 찰나에 반짝거리다 떨어지는 별똥별과 같다는 걸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깨닫는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쉽지만, '깨닫는 건' 쉽지 않다. 죽음의 그림자가 바로 내 근처로 오기 전까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흔히 말하는 먹고 사느라 바쁘셨던 작은 아버지에게 이런 생각하며 숨고를 틈이 있었을까.
작은아버지 비보는 북큐레이터라는 꿈의 실현을 더욱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북큐레이터라는 것이 현실 가능한 지다. 북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돈 되는 직업 일리 만무하며, 무엇보다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돌연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내공을 쌓고 있는 중이다. 회사일에 치여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꿈을 실현하는 것을 꿈꾸는 중이다. 언젠가 도전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조금씩 천천히.
part2. 북 보부상
얼마 전 마라톤을 같이 하는 후배 H 손에 이끌려 서촌에서 열린 독립출판 마켓에 가보게 됐다. 평소 읽는 책이라고는 대형 출판사 유명 작가 서적뿐. 히가시노 게이고, 임경선 작가, 신경숙 작가의 책과 같은 대중적인 독자에 어울릴 만한 책들 말이다. 덕분에 독립 출판물의 세계에 드디어 입문한 것이다.
독립출판은 말 그대로 작가가 대형 출판사의 전문 편집, 출판과정을 거치지 않고, 1인 또는 소수인원이 출판원이 되어 책을 출판하는 과정을 말한다. 글이 한번 더 필터링되는 프로세스가 생략되다 보니 작가 고유의 특성이나 개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그 매력에 빠져 독립출판물로 넘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립출판물이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아마추어 같지 않을까 생각한 건 편견에 불과했다. 개성과 전문성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중에서 옥석을 분명히 가려서 읽어야 할 책들도 존재한다. 이 글에서 밝힐 수 없지만 표지부터 눈길이 가지 않고 내용은 부실하거나, 인별 그램에나 올릴법한 생각의 편린들을 갈무리한 문장들은 아무래도 좋은 글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겠지만.
책 보부상 마켓을 둘러보고 난 뒤 H 후배와 나는 한번 읽은 책을 다시 펴보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대형 출판물, 독립출판물, 그리고 해외서적까지 죽기 전에 읽어나갈 책들이 밤하늘의 별과 백사장 모래알만큼 무수하다. 세상에 읽을 책이 많은데 읽던 책을 또 읽을 필요가 있나 하는 같은 이유로 말이다. 많은 책을 들여다보고 그 우주 안에 담긴 좋은 문장들을 인생에 담아 가는 재미를 아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책 장바구니에 담다 보면 우리 인생도 한권의 멋진 책처럼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