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아라 작가 Nov 05. 2024

미디어에 빠져 삶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눈 마주칠 시간도 없는 우리들

며칠 전 이태원, 친구들이 운영하는 와인을 마시며 그림을 그리고 요가를 하는 클래스에 참석했다.


그곳엔 아는 친구도 있었고, 남자친구도 함께 했기에 그다지 어색한 자리는 아니었다. 굳이 어색함을 꼽으라면 외국인 친구와 영어를 하는 분위기였다는 게 조금은 낯설었을 뿐.


그림을 그리기 전 와인을 한 잔 먼저 마시자는 제안에 다들 미소를 뗬다. 그렇게 준비된 와인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다 같이 cheers~라고 소리 내며 잔을 부딪쳤다.


한 모금하면서 감상하고 감탄하고 있던 찰나. 운영자 친구가 이렇게 말을 했다. "서양에서는 잔을 부딪칠 때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봐요. 우리도 그렇게 한 번 해볼까요?"


우리는 어색했지만, 다시 한번 민망한 눈웃음과 함께 cheers를 했다.


며칠 뒤 월요일 오후,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려 집에서 나와 스타벅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카페로 걸어가는 그 틈에 메일, 블로그, 숏츠, 달력, 카톡 등등을 드나들었다. 좁은 길에서는 사람들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잠시 앞을 보고, 앞에 장애물이 없음을 확인하면 다시 눈길은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카페에서는 내가 차지할 테이블만 표적이 될 뿐. 이내 이어폰을 꽂고 노트북 속 세계와 나만 남았다. 2시간가량의 작업을 끝내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누가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는 아까 썼던 글을 조회수를 살펴본다고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5시 무렵 지하철역 부근이 사람들로 붐비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고개를 들고 좁은 길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사람들이 모두 내 모습과 같다는 걸. 여기 있지만 여기 없는 사람들.


모두 핸드폰 그 너머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


우리는 더 이상 눈을 마주칠 시간이 없다. 정신도 이곳에 없다.


어떠한 작업을 위해 몰입하는 것과는 다르다. 흔히 killing time이라고 하는 시간, 즉 소비하는 행위들이다. 시간만 소비하면 다행이다. 불행하게도 정신은 피폐해지고 점점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찬다. 무엇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지는 지도 모르는 채.


지난주 이태원에서 수업이 끝나고 남자친구가 자연스럽게 내뱉은 한마디가 떠올랐다.


"그나마 핸드폰을 멀리하게 되다 보니 잠시나마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었어."


핸드폰을 손에서 떼지 않는 그에게는 2시간 넘게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는 건 일상에서 더더욱 힘든 일이겠구나.


돌이켜보면 나 역시 미래를 불안하고 해야 할 일에 집중을 못할 때 하는 행동 중에 하나가 바로 유튜브에 빠지는 것이다. 나에게 전혀 관련이 없는 챌린지를 보고 있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몰래카메라며 실험등을 보고 있다. 보다 보다 지겨우면 짧은 영화소개나 인스타그램을 보게 된다.


그럴 때 나는 평상시에 가진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호흡이 짧아지고 머리가 탁해진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이 나를 휘어잡는다.


반면에 여유로울 때를 생각해 보면 아침루틴을 하면서 하늘도 감상하고, 커피를 마시며 책도 읽는다. 책을 읽으며 내 생각과 영혼의 그릇이 자연스레 넓어짐을 느낀다. 때로는 카페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잠시 바깥을 보며 생각을 곱씹고 상상을 펼쳐간다. 그 자체가 행복이다. 돌아오는 길은 아주 천천히 풍경을 음미한다.

이럴 때는 자연스럽게 미래지향적이 된다. 아주 밝고 희망차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글을 쓴다.


어제는 조금 무서운 생각을 해봤다. 내가 내 세상에 어떠한 미디어를 주입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 미디어가 내 신념과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종종 <결혼지옥>, <이혼숙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본다. 물론 재미도 있지만, 그게 알게 모르게 나에게 결혼 후 실패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무엇이 진짜 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 번쯤은 멈춰서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삶과 가깝게 나아가고 있는지, 내 신념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내 세계관에 어떤 미디어를 주입하고 있는지 등을 적어보고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 한 번 마주칠 여유는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더 무언갈 하려고 하기 전에 '이것'을 점검해 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