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눈으로 본 인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김훈의 『개』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를 읽고
by
약속의 땅
May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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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말하는 글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인간을 가장 낯설게 만드는 시선은, 바로 인간이 아닌 존재의 눈일지도 모른다.
김훈의 『개』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는 각각 개와 고양이라는 비인간적 존재를 화자로 삼아 인간을 관찰하고,
때로는 애정 어린 눈길로, 때로는 냉소적 거리감으로 인간의 본질을 묻는다. 두 작품은 매우 다른 결로 써졌지만,
공통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잃어버리고 있는 중요한 가치를 조명한다.
김훈의 『개』에서 보리는 말이 없다. 아니,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김훈은 ‘보리’라는 개의 감정과 인식을 문장의 짧은 숨결 안에 눌러 담는다.
“나는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끝이 없었다.”
보리는 버려졌고, 주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보리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인간은 쉽게 관계를 끊고 등을 돌리지만, 보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인간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보리는 말없이 인간의 상처와 욕망을 안아준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굶주림을 견디고,
다른 개들에게 쫓기며 살아가면서도 인간의 냄새를 기억하고, 인간을 그리워한다.
그는 세상을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눈으로 보았고, 냄새로 기억했다.”
감각의 언어, 사랑의 본능. 인간은 잃어버린 언어다.
김훈의 보리는 인간이 더 이상 가지지 못한 것을 지녔다. 충성, 기다림, 책임,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
그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인간의 황폐한 감정 세계를 되비춘다. 그의 침묵은 말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랑을 증명할 언어가 없을 때, 기다림만이 진실이 된다.
한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비춘다. 이 소설은 고양이 ‘바스테트’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인간의 문명이 붕괴해 가는 과정을 고양이의 눈으로 관찰하고 평가한다. 바스테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불을 통제하지 못한다. 불은 그들의 욕망이다.
그들은 욕망을 타오르게 했고, 이제는 그 욕망이 세상을 태우고 있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고, 누군가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바스테트는 인간을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본다. 기술은 발달했지만, 감정과 관계는 퇴화했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세우기로 한다. 고양이의 언어, 고양이의 법, 고양이의 연대.
이 모든 상상은 인간이 더 이상 만들 수 없는 새로운 질서의 상징이 된다.
베르베르는 상상력으로 인간을 해체한다. 고양이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깊이 관찰한다.
때때로 연민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는다. 인간이 저지른 파괴, 전쟁, 지배, 무질서는 고양이에게는 ‘반성의 교과서’다.
“그들은 자신이 지구의 주인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존재가 무슨 주인인가?”
이렇게 보면, 『개』는 인간을 향한 애정 어린 응시이며, 『고양이』는 인간을 향한 냉철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 서로 다른 시선은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인간이 상실해 버린 본질적 가치들.
보리는 인간에게서 사라진 ‘무조건적인 관계의 감정’을 말하고, 바스테트는 ‘자기 성찰과 절제의 부재’를 지적한다.
사랑, 충성, 기다림, 공존, 성찰…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단어들이다.
인간은 많은 것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빠르게 연결되지만 느리게 공감하고, 많이 말하지만 깊이 듣지 않는다. 고도로 문명화되었지만, 쉽게 외롭다.
그런 시대에 동물의 시선으로 쓰인 두 작품은 거울이자 경고이며, 동시에 위로가 된다.
말 없는 보리의 눈빛이, 독립적인 바스테트의 침묵이 우리에게 말해준다.
당신은 지금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느냐고.
동물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보다 더 정확한 방식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개』와 『고양이』는 그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적고 있다.
우리가 그 목록을 다 읽기도 전에,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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