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 그리고 사람을 목격한 사람
묵묵히 바라보는 철학 – 고병권을 읽다
고병권은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다.
나는 그를 ‘길 위의 철학자’라고 부른다.
주류 철학 담론의 중심보다는 삶의 가장자리에서, 책상보다 거리에서
자신의 철학을 살아내려는 사람. 그런 그의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의 글을 읽으면 철학이 거대한 개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선과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가 쓴 많은 책들 중에서도,
《묵묵》과 《사람을 목격한 사람》을 특히 아끼고 기억한다.
《묵묵》은 침묵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그 침묵은 비겁한 침묵도, 냉소적 침묵도 아니다.
세상의 소음과 폭력 앞에서 말을 삼키는 윤리, 고통받는 타인의 목소리를 먼저 듣기 위한 멈춤의 윤리다. 고병권은 “묵묵함은 비겁해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어서,
혹은 그보다 감당해야 하기에 조용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한참을 책장을 덮고 있어야 했다. ‘그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보다 먼저 타인을 담아내는 태도, 그게 묵묵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은 그 묵묵함의 연장선에 있다.
이 책은 장애, 빈곤, 배제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단순한 관찰이나 르포가 아니다. 고병권은 ‘본다’는 말의 무게를 되묻는다.
우리는 정말 타인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어떤 프레임 속에서 ‘훑고’ 있는가?
그가 말하는 ‘목격’은 단순한 시선이 아니다.
그건 내가 그 앞에서 어떤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이다.
사람을 목격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목격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나의 무심함’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나의 무력감’을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철학의 대부분은 사유다.
하지만 사유에만 머무른다면 그 철학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아는 것, 내가 고민하고 깨달은 것들이 내 삶의 자취를 따라 살아내 지지 않는다면 그건 철학이 아니라 장식에 불과하다.
고병권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말하지 않고, 바라보며, 살아낸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묵직하고, 뚜벅뚜벅, 거리 위를 걷는다.
철학은 무엇보다 ‘태도’라는 사실. 그 태도를 삶으로 보여준 철학자, 고병권.
그의 책은 어떤 이론서보다 나를 오래 붙잡는다.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고, 바라봄으로 끌어안는 철학.
그의 철학은 문장이 아니라 자세다.
그래서 나는 그를, 계속해서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