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_시인들의 조용한 혁명
우리가 깨야 했던 것
그들은 매일 아침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낡은 제복의 단추를 채웠다.
식당에서는 소리를 죽였고, 교실에서는 허리를 곧게 세웠다.
무언가를 질문하기보단, 외우는 것에 익숙했다.
그것이 그들이 자란 자라 갈 세계였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의 단정한 세계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질서 잡힌 아이들에게 시를 읽어 주었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을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을 붙잡으라고.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말은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알아차렸다.
나의 삶이, 사실은 누군가가 짜 놓은 틀 안에 있다는 것을.
그 틀에는 이름이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익숙해졌을 뿐이다.
부모의 기대, 교장의 질서, 명문대라는 목적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같은 질문은
그 틀 안에서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그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닐은 연극 무대에 섰다.
그 무대에서 그는 처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그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자유는, 너무 짧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생에서
가장 진실한 순간을 한 번은 가졌던 것이다.
토드는 시를 외웠다.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두려워하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떨렸고, 더듬었고, 결국 울었다.
그러나 그 울음은 자신의 이름을 찾은 사람의 울음이었다.
나머지 아이들도 달라졌다.
어떤 이는 사랑을 시작했고,
어떤 이는 거짓에 등을 돌렸고,
어떤 이는 부모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는 내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도 저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만들어놓은 당연한 세계 속에서
질문 없이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 『프레임』에 이런 말이 있었다.
“프레임은 보는 법을 바꾼다. 그러면 세상이 달라진다.”
영화는 말한다.
프레임을 깨기 위해선,
우선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그것은 고통스럽다.
자각한 자만이 고통이 주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지금껏 붙잡아온 질서, 부모의 목소리,
사랑받기 위해 감추어 온 욕망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마주한 뒤에야
비로소 사람은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사진출처_네이버
그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한 줄을,
진실한 문장으로 써내려 갈 수 있다.
영화는 오래전에 끝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교실 맨 뒤 책상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써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써야 한다.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장을.
“나는 나의 구절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