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오랫동안 보고 있는 펜 중의 하나이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한 팀을 묵묵히 응원했고, 희망과 실망이 계절처럼 반복되는 것을 경험했다.
선수들은 오고 갔고, 어떤 이름은 기억 속에 남았고, 어떤 이름은 사라졌다.
성공은 반짝였지만, 진득함은 오래 남았다. 기억에 남는 이름은, 빛보다 깊이 있게 남은 이들이었다.
야구는 복잡한 경기다. 한 번에 이해하기에 어렵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접근이 어려운 종목이다. 많은 기술과 전략, 순간의 판단이 얽혀 있는 종목이다. 나는 그중에 늘 투수를 눈여겨본다.
투수
공을 던지는 사람, 고독한 자리에 선 사람. 마운드 위에서 공 하나로 승부를 짓는 사람. 그들은 말없이, 한 점을 노린다.
투수가 던지는 공은 크게 두 종류다.
직구와 변화구.
앞으로 밀어붙이거나, 꺾어 속이거나.
직구는 힘이고, 변화구는 간계다.
하지만 아무리 빠른 공이라도, 아무리 날카롭게 떨어지는 공이라도,
제구가 없다면 무기가 되지 못한다. 빠르다고 해서 위력 있는 게 아니다.
그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 어디에 꽂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속도만 있는 공은 방향을 잃기 쉽고, 결국 자신도 잃는다.
방향이 없는 힘은 위험하다. 불꽃처럼 번쩍이지만, 이내 타버리고 사라진다. 간계함만 있는 공도 먹히는 듯 하지만 타자는 패턴과 궤적을 파악한다.
그래서 좋은 투수는 직구와 변화구를 모두 가진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모든 공을 ‘어디에 어떻게’ 던질 수 있는가다. 제구력.
제구는 정확함이며, 인내이며, 태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향해, 한 치 오차 없이 던지는 능력. 포수가 낸 미트 소리 위에 공을 꽂는 집요한 정직함.
어깨가 좋은 투수는 구속으로 주목받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팔은 빠르지만, 마음이 흐트러지면 공은 흔들린다.
자신의 어깨에 도취된 선수는 던지기보다
흘려보내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그 흐름이 무너지면, 다시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다.
반면, 평범한 구속에 날카로운 제구를 가진 투수는 조용히 살아남는다. 튀지 않지만,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는 방망이를 흔들게 만들고, 타자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의 공은 소리보다 깊다. 마치, 칼을 물속에 담그듯. 제구력은 재능이 아니라 습관이며 훈련의 결과에 가깝다.
태도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한 공을 만들기 위해 수천 번을 던지고, 수천 번을 고친다. 지겹고, 단조롭고,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그 반복이 모여 공 하나의 완성을 만든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신념에 가깝다.
때로 게으름은 강한 어깨에서 시작된다.
대충 던져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 스며들면
정확함은 사라지고, 습관은 흐트러진다.
그 작은 틈이 경기를 무너뜨리고, 그 무너짐은 선수의 시간을 지운다.
그래서 나는 투수를 볼 때, 구속보다 제구를 본다. 제구는 그가 걸어온 시간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공이 빠르기보다, 공이 흔들리는지, 정확히 들어가는지를 본다. 변화구도 눈에 보이게 꺾이는지 꺾이지 않을 것처럼 꺾이는지 본다.
신인이 올라와 던지는 공속에서도 그가 오래갈지, 금방 사라질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제구가 되는가, 되지 않는가.
그 기준 하나로 갈림길이 생긴다.
살다 보면 안다.
인생도 공처럼, 던지는 것보다 꽂는 게 중요하다. 열정은 순간을 태우지만, 꾸준함은 시간을 지탱한다. 타고난 재능은 누구나 부러워한다. 하지만 끝까지 남는 사람은,
묵묵히 자기 공을 던지는 사람이다.
성실은 매일의 반복이고, 정직은 그 반복의 방향이다. 성실하되 정직하지 않으면 해가 되고, 정직하되 성실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둘은 함께 있어야 비로소 빛난다.
나는 내가 감당할 만큼의 공을 쥐고 있다.
멀리 던질 수는 없어도, 흔들리지 않고 던지고 싶다. 공이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제자리에 도달하는 공이, 경기를 만든다.
내 하루도 그렇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눈앞의 일 하나를 정직하게 해내는 일, 그게 내 삶의 제구력이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일, 대충 넘기지 말라고.
오늘을 속이면 내일은 지워진다.
재능은 누구나 타고나지 않는다. 그러나 제구력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그걸 가질 만큼 견디는가이다.
인생은 공 하나다. 하루 하나, 사람 하나, 말 한마디. 어디에 어떻게 던질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내가 던진 공에 내가 맞는다.
무게는 누구에게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