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죽은 물고기들만 물결을 따라 헤엄친다.”
속담이나 격언은 산속의 오솔길 같다.
처음엔 길이 아니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 길이 된다.
속담은 누군가 책상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낸 문장이 아니다. 인간사가 수없이 경험된 끝에 남겨진 산물이다. 때로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을 드러내고, 때로는 각 민족의 가치관을 담아내며 오늘까지 전해진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 문장이 속담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 사이의 경험이 누적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속담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삶을 살다 간 이들의 지혜와 경고가 녹아 있는 유산이다.
내 마음을 오래 붙잡은 격언이 하나 있다.
독일의 속담이다.
“오직 죽은 물고기들만 물결을 따라 헤엄친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관계라는 물결 속에 휘말린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처세라는 기술을 배우게 된다.
눈치라고도 하고, 좋게 말하면 삶의 지혜라고도 한다.
손해 보지 않고, 좋은 이미지를 주며, 상대도 만족시키는 인간관계의 기술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처세와 관련된 속담이 많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사람 많은 쪽에 줄을 서라.”
“대세를 따르라.”
노무현 대통령도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라며 인용한 적이 있고, 영화 더 킹 속에서도 정우성이 후배 검사에게 “그냥 역사적으로 흘러가”라고 말한다.
이런 말들은 결국 시류를 따르라는 권고다.
그러나 격언은 묻는다.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것은 살아 있는 물고기인가,
죽은 물고기인가?”
살아 있는 물고기는 다르다.
때로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때로는 세찬 흐름 속에서도 꼬리로 버티며 제자리를 지킨다.
세상은 그런 물고기들 덕분에 아름다워진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전체 인구의 0.02%에 불과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일본의 힘 앞에 굴복하거나, 소극적으로 가만히 있는 길을 택했다.
“어쩔 수 없지. 현실이 그렇지.”
이 말속에는 대세에 편승한 다수의 체념이 담겨 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물결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끝내 독립은 다수의 순응이 아니라, 소수의 저항이 이룬 결실이 되었다.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선택은 언제나
저항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 저항을 견뎌낸 사람은
결국 성취를 맛본다.
영화 도가니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키는 일이다.
존엄을 지키는 일이고, 자존을 세우는 일이다.
물결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는 죽은 물고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흐름을 거슬러 살아 있는 물고기로 설 것인가. 이 질문은 결국,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다른 말일 것이다.
스스로 죽은 물고인지 살아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존재인지 다시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자고 다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