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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앤비 Dec 08. 2020

차를 사다

며칠 전까지 우리 부부에게는 차가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이 되고, 아이의 걸음으로 20분은 족히 걸리는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도 차를 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뚜벅뚜벅 누구보다 많이 다녔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또 기차를 타고 아이들과 여행을 다녔다. 기동성 좋은 휴대용 유모차를 밀고 지하철 역을 그렇게 헤치고 다녔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 추억이려니 했고, 운동이려니 했다.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에 갈 때는 부모님께 차를 빌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실 때가 더 많은 부모님은 항상 흔쾌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가장 힘들 때는 어린이집 등 하원 시간에 비가 쏟아질 때였다. 비는 야속하다. 꼭 하원 할 때 온다. 그럴 땐 가까운 곳을 가도 부르면 와주는 타다가 그렇게 고마웠다. 타다가 없어진 걸 슬퍼한 사람이 많았다는데, 최연소는 우리 첫째 아들 일거다. 다섯 살 꼬맹이는 냄새에 민감해서 택시를 타면 나는 냄새가 싫다고 했다. 타다를 타면 냄새가 안 나서 좋단다. 차가 높아서 밖이 잘 보이는 건 덤이다. 아무튼 타다가 그렇게 가고 아내는 몇 번이나 비를 쫄딱 맞고 하원을 했다. 나는 한여름에 속옷까지 땀에 젖어 등원을 시키고 출근 지하철을 타느라 민망했었다.


차 없는 생활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가 둘인데 차를 사지 않는다니,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가족이군요'


그렇지 않다. 우리 가족이 버리는 재활용 쓰레기의 양을 보면 환경 때문에 차를 사지 않았다고 생각하진 못할 거다. 환경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기엔 삶이 고달프다. 여태 차를 안 샀으니 결과적으로 환경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겠지 하는 정도일 뿐이다.


'애기들 있으면 어디 갈 때 짐이 많을 텐데 괜찮으세요?'


물론 부부 둘이 살 때보다 짐이 많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 부부는 어쩌다 보니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2박 3일 가족여행을 해도 웬만하면 트렁크조차 안 꺼낸다. 한 달 해외에나 나가야 트렁크에 쌓였던 먼지를 턴다. 둘째 태어날 때, 당근 마켓에서 디럭스 유모차를 하나 샀다가 우리한테 안 맞아서 금방 다시 팔았다. 유모차는 역시 골프우산 사이즈로 접혀서 한쪽 어깨에 맬 수 있는 게 최고다.


'차를 사기에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 아니니? 안쓰러워.'


이건 부모님의 마음이다. 감사한 마음이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차를 사고 유지할 형편이 되고 안 되고는 우리가 차가 얼마나 필요한지, 차에 우선순위를 얼마나 두는지에 달려있다. 무조건 차로 출퇴근해야 하는 사람은 지금 주머니 사정이 어찌 됐건 차를 살 형편인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잔고가 넉넉해도 차에 돈 쓸 필요가 없다. 우리 부부는 차를 살만큼의 잔고가 있지만 차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필요를 못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차를 사면 잔고가 거의 없어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차가 생겼다.


우리가 차를 사기로 한 기준은 딱 하나 '매일 차를 써야 하느냐'였다. 아내는 첫째를 낳고 퇴사를 해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실질적으론 프리랜서에 가까웠다. 물론 힘들었으나 아내는 나름 육아와 일의 밸런스를 찾아냈다. 그리고 둘째가 어린이집에 적응할 무렵인 몇 달 전, 아내도 다시 출근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출퇴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등 하원이 빠듯해졌다. 부모님께 빌려온 차는 빠듯한 등 하원 시간을 맞추기 위한 셔틀버스화 되어 돌려드리지 못했다. '매일 차를 써야만 하는 순간' 이 그렇게 우리에게 온 것이다.

차가 없었던 신혼 6년간의 시간은 이제 정말 추억으로 남을 거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시간이건 그 사람의 인생 전체에 맞는 의미를 부여해 주신다. 어떤 의미를 어떻게 찾을 건지는 하나님 앞에 선 그 사람의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이 시기를 감사히 마무리하며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가족에게 젊음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가 없어서 우리는 더 많이 걸을 수 있었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큰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갈 때, 카시트가 아닌 유모차 안에서 세상을 신기해하며 이제 막 말을 배우던 아이와 이야기 나누던 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씽씽이를 처음 배워 아빠와 달리기 시합하자던 그 길도 생생합니다. 비를 맞고 하원 하고도 재밌다며 웃던 아내와 아이들 얼굴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가 없는 우리를 안쓰러워하고 마음 써주시는 부모님의 사랑도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것이었겠지요. 차를 사는 과정에서도 지혜와 사랑과 인내를 배우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첫 차에서 누릴 기쁨도 기대가 됩니다.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주님 고맙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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