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

아메리카나 1, 2/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by 시지프
남들은 그를 미국계 아프리카인으로 생각할까,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생각할까 궁금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되레 남들이 그가 누구인지를 선택해 줄지도 모른다. - 책 속에서


<문명 5>라는 게임에는 유명한 환영사가 하나 있다. 세종대왕이 플레이어에게 건네는 독특하고 인자한 억양의 인사다. 재미있는 콘텐츠로 유명했던 말이지만, 어쩐지 내게는 '새로운 곳' 하면 떠오르는 목소리가 되어 버렸다. 외국에 가서도 이렇게 친근한 환영 인사가 들려오면 좋으련만. 그러나 다른 나라로의 입성은 내가 이방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궤도 밖을 빙빙 도는 사람처럼,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결코 완전히 속할 수는 없는 존재 말이다. 21세기가 아무리 국제화 시대라 해도 '소속'은 마음속 불가침의 영역인 듯하다.


대한민국에서 나는 당연히 뿌리 깊은 자국민이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위계질서와 차별이 존재하기는 하나, 어찌 되었든 국적을 가진 엄연한 한국인이다. 그러니 나는 한국에서 '동양인'이 '아니다'. 딱히 인종 정체성을 느끼고 구분하며 살아갈 일이 없다는 뜻이다. 동양인,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절대다수인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외국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동양인이 되고, 동북아인이 되고, 한국인이 된다. 이 책의 구절을 빌려 표현하면 '난생처음으로 동양인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타자'가 되는 것은 제법 취약한 일이다. 낯선 땅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느낌은 불유쾌한 감정이다.


7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으로, 이 책은 각각 미국과 영국이라는 서양의 강대국에 발을 내딛는 나이지리아인 주인공들이 어떻게 타자화되는지, 적응해 가는지를 상술한다. 마음에 품은 '아메리칸 드림'이 부서져 내리는 과정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커플이었던 이페멜루와 오빈제는 고국인 나이지리아에서 그다지 모자람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페멜루는 우수한 성적을 가진 뛰어난 학생이고, 오빈제는 교수의 아들이다. 우리나라로 치환해 생각해 보아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모국의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두 사람은 각자 미국으로,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한 줌 희망을 안고 도착한 땅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밝은 미래가 아니다. 영국에서 오빈제는 그저 '흑인'일 뿐이고, 그렇기에 험한 일을 도맡아 하며 불법체류자가 되기까지 한다. 신분을 위해 가짜 결혼도 감행하는데, 이는 고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이다. 이페멜루는 상류층 백인 가정에 보모로 고용되고,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누구도 이들을 나이지리아에서처럼 보통의 인간으로 봐주지 않는다. 이페멜루의 백인 남자친구도, 주변인도 은연중 그에게 시혜적인 태도를 보인다. 배려의 탈을 쓴 달갑지 않은 우월성은 이페멜루의 꽁무니를 계속 따라다닌다.


같은 흑인이라면 뭔가 다를까? 미국에는 수많은 흑인이 살고 있으니 똘똘 뭉치기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한 작가가 쓴 만큼, 같은 인종이지만 다른 배경을 가진 흑인의 심리를 명료하게 파악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흑인과 아프리카인 흑인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다. 전자는 미국인이고, 후자는 아프리카인이다. 이페멜루는 아프리카인이기 때문에 미국인 흑인들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미국이라는 땅에서 같은 차별을 당했음에도 좀 더 무감하다. 심지어는 두 집단이 속한 대학 내 학생회도 다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인끼리는 어떤가? 이들도 모두 다르다. 적응 방법부터 모든 면면에 차이가 있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사회인 것이다. 냉정히 이해관계를 따져 행동하는 사람, 백인과 타협해 그들처럼 살아가려 하는 사람 등등, 인종이 같다는 것 말고는 동질감을 느낄 틈이 없다.


할 일을 마친 두 사람은 마침내 나이지리아로 돌아오지만, 반가운 고국에는 또 다른 '차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삶을 감내하는 동안 그들은 서구 사회의 방식에 스며들어 버렸다. 이들을 대하는 나이지리아인들의 태도와 나이지리아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 중 어느 것도 떠나기 이전과 같지 않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이방인이 되고 만다. 돌아온 모국에 느끼는 낯섦은 상황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만 같다. 되레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감정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변화가 만든 자연스러운 불편함이다. 외국에 있는 동안 딱히 나아진 것 없는 삶을 살았음에도, 적응은 변화를 의미하므로 두 사람은 고국이 불편하다. 부모님마저도 촌스러워 보여 죄책감이 든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보았던 정부 인사의 화려한 집이 돌아와 보니 폐허가 되어 있던 것처럼 멈춰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동안 그리워하던 나이지리아는 옛날, 그땐 그랬던 나라였던 거다.


이 세계에 지상낙원은 없다. 근사해 보일지는 몰라도 모든 나라는 울타리 쳐진 대저택이다. 외부인에게 더없이 멋져 보이지만 들어가기는 힘든 곳 말이다. 간간이 보이는 내부인은 꽤나 행복해 보이지만, 언뜻 보면 그렇지 않은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그런 곳이다. 성냥팔이 소녀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따뜻해 보이던 그 집이 대단히 단란한 가정은 아니었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적당한 희망 정도만 쥐고 떠나는 것이 좋겠다. 그 정도는 수화물에도 안 걸릴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