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 뒤에 가려졌던 '나'를 위하여
10년 전, 삶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엄마를 잃고, 건강을 잃고, 휘몰아친 가정 경제의 쓰나미까지 밀려왔다.
이제껏 살아온 방식대로 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그게 아니었다.
수학 공식처럼 외워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닥칠지 알 수 없는 문제였다.
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온 문제를 풀기 위해, 준비된 자세와는
다른 정신으로 살아야 했다.
신랑의 월급으로 카드값 공과금을 내며 아등바등 살던 시절이 좋았다.
엄마의 정성 어린 반찬을 놔두고 맛집을 검색하던 날들이 뒤늦게 후회되었다.
내 몸은 돌보지 않고 아이 뒤만 쫓던 무지한 엄마였던 나.
변해야 했다.
'자기 계발', '성장'과 거리가 멀던 내가
벼랑 끝에서 필사적으로 붙잡은 것은 책이었다.
고통을 극복하고 당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곤, '다르게 살아보자'는 결심이 불현듯 올라왔다.
어떤 연유로 끊임없이 시련이 찾아오는지, 원망과 자책의 시간을 견디며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준비 없이, 노력하지 않는 삶'은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은 바꾸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성장한 엄마, 지혜로운 내가 필요했기에
이제껏 살아온 삶과 180도 다른 삶으로 전환했다.
그래, 한 번 살아보자.
그렇게 벼랑 끝에서 동아줄을 붙들고,
힘껏 나를 들어 올렸다.
마음의 빈 구멍을 메울 책을 샀고,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인강을 결제했다.
세상과 단절된 고요한 새벽, 책을 읽으며
글 한 줄에 울고 웃으며 조금씩 성장했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뜨거운 마음을 끄적이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썼다.
자신과 마주 앉아 꾹꾹 눌러쓴 한 문장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토닥토닥. "힘들었지?"
글쓰기는 나와의 소통 창구였고,
울분을 토해내는 감정의 배출구였다.
방황하지 않기 위한, 삶의 내비게이션이었다.
27년, 아이들 키우는 일에만 진심으로 살아온 시간.
그렇게 시작한 것이 공부방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신랑이 실직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계형 공부방.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아이들에게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눠주자."
"엄마처럼 따뜻한 어른이 되어주자."
그것이 공부방 문을 열던 날의 다짐이었다.
큰아이를 학습으로만 키운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체력 부족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며,
사춘기를 제대로 겪으며 깨달았다.
성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둘째는 다르게 키웠다.
새벽 운동부터 집밥까지,
건강한 삶의 루틴을 만들어주었다.
공부방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학습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성장시켰다.
"디지털 시대라도 교육은 아날로그다."
그렇게 외치며 27년을 살았다.
아이들의 뒤편에 서서,
내 삶보다 아이들을 우선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절실함.
그것은 누가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함이란,
더 이상 현재 상태로는 살 수 없다고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등 뒤에 불이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
누군가 밀어줘서가 아니라,
스스로 뛰어야만 하는 상황.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옆에서 지켜주는 것이
때로는 온실 속 화초처럼 비닐을 한 겹 더 씌우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절실하지 않은 아이들은 남을 탓하고
상황을 탓했다.
반면, 절실한 아이들은 그냥 변했다.
한 번 말하면 알아들었고, 그날부터 달라졌다.
운동 시간에도 제일 먼저 나왔고,
공부방에도 제일 먼저 도착해 공부했다.
목표를 세워 환경을 바꾸려는 절실함이 있는 아이만이 진짜로 달라졌다.
작년, 학점제가 도입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학교 활동이 중요해지고, 성적 싸움이 치열해졌다.
아이들은 대형 학원으로 떠났다.
8년 이상 함께한 아이들조차,
감사 인사는커녕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나갔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였다는 것을.
내가 외쳤던 "교육은 장삿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얼마나 허무한 외침이었는지를.
그리곤, 번아웃이 찾아왔다.
27년간 아이들을 성장시키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진짜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었다.
학습 위주로만 평가하고 재단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꿈조차 제대로 꾸지 못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기본적인 루틴 - 운동, 집밥, 건강한 습관.
이것들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그런데 정작 나는?
내 삶의 루틴은 엉망이었다.
아이들 뒤편에만 서 있느라,
정작 나는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
54살, 새로운 토양으로
이제 나도 나를 옮겨심기로 했다.
공간을 이동하면서 그동안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두 번째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제는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성장하는 데 에너지를 쓸 것이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싶다.
.
작년, 오랜 기간 함께 한 사람들과의 이별에
아팠지만 결국 그것들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딸에게 보여줄 것이다.
행복한 엄마의 뒷모습을.
스스로를 돌보는 어른의 모습을.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그것이 내가 딸과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성적표도, 돈도 아닌,
나답게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
54살, 나는 비로소 나를 옮겨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