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간호사와 세 명의 전사 할머니
공황장애
두려움이 뭔지 정말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불안하고 막연히 두려운 순간들이야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슬쩍 고개를 돌리거나 그 자리를 피하면 그만이었다. 두려움이란 건 나에게는 늘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병원에서 어느 순간, 공황장애 환자가 된 나 자신과 마주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몰려오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 그것이 내 안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수술실 천장의 기적
차가운 수술실, 그 천장에 적힌 성경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종교가 없는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 같았다. 그 글자들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몇 번의 호흡 후 마취에 빠져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 그렇게 두렵던 두 번째 수술이 끝났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그 이후였다.
무너져가는 나
수술은 끝났지만 끝이 아니었다. 전신마취 후유증, 항생제 부작용으로 인한 설사,
수술 부위 관리를 위한 금식까지. 높아진 혈압과 불규칙한 맥박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고,
밤마다 잠들 수 없었다.
한 번도 힘든 수술인데 두 번째라니. 몸뿐만 아니라 삶을 향한 믿음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병실 할머니의 응급상황을 목격했다. 순간 돌아가시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나와 엄마, 그리고 그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평소 아이들에게 "하면 된다"를 입에 달고 살던 내가, 간호사 앞에서 울면서 호소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간병 병동이라 보호자도 없어 모든 걸 스스로 판단해야 했는데, 정작 판단력은 사라져 버렸다.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진정되지 않았다. 그날 밤, 한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구원의 손길
숨이 막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 누군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그건 단순한 간호가 아니었다.
구원이었다.
"괜찮을 거예요. 사실 저도 이런 적 있어요. 눈물만 나오고, 가슴이 답답하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심장이 뛰고..."
그 간호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불안에 떨던 나를 간호사실에서 쉬게 해 주었다.
조금 진정된 후 생각해 봤다. 수술은 성공했고, 지금의 불편함 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텐데... 대체 내가 뭘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
그동안 아이들에게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그렇게 말해왔는데, 정작 내 문제 앞에서는 이렇게 무너져 있었다.
문득 아이들이 떠올랐다.
"못 하겠어요. 두려워요. 힘들어요."
조금만 어려워도 울던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왜 안 된다고 생각해? 마음을 바꿔봐. 할 수 있어."
재수술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나를 무너뜨렸듯, 아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결국 공부든 뭐든, 모든 건 마음의 문제였다.
세 명의 전사 할머니
2주 입원 기간 동안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세 분의 할머니가 계셨다. 진짜 전사 같은 분들이었다.
**첫 번째 할머니**는 응급상황까지 겪으셨지만, 며칠 후 병실 복도를 걸으며 회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 병동의 희망이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병과 싸우는 모습을 보며, 섣불리 상황을 판단해 버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두 번째 할머니**는 내가 울고 있을 때 커튼을 확 젖히며 호통을 치셨다.
"아이가 몇 살이야? 이렇게 약해빠져서... 아직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애를 어떻게 키울 거야? 그만 울어!" 70대 할머니가 주신 따끔한 용기. 하늘에서 보내준 든든한 파수꾼 같았다.
**세 번째 할머니**는 80대 후반의 하얀 머리를 하신 분이었다. 매일 아들에게서 사랑한다는 전화를 받는 모습이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너무 닮아 있었다. "따라와!" 한마디에 병원 복도를 함께 걸으며 운동하던 할머니. 마치 삶이 내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할머니가 물으셨다.
"자네, 나를 어디서 본 적 있나?"
"아니요."
사실은 '외할머니를 닮아서 그냥 좋았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네는 내가 아는 동네 사람과 닮았어. 그 사람은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서 지금 장애인이 되었지. 내게 참 잘해주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자네처럼 이렇게 멀쩡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제야 알았다.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할머니는 아픈 동네 분을 떠올리며 서로 비슷한 무언가에 이끌려 병실에서 정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일어서기
몸도 마음도 무너진 그 순간, 세 분의 할머니 덕분에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할머니들 말씀이 맞았다. 아이 때문에라도 힘내야 했고, 시간이 지나면 분명 회복될 거였다. 그런데 내가 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했던 걸까?
보이지도 않는 막연한 공포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불안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두려움과 맞서는 힘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 관심 어린 눈빛, 그리고 조용히 내밀어주는 손길이면 충분했다. 최첨단 의료기술이 아니라 그냥 덥석 잡아주는 따뜻한 손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만났다. 희망은 언제나 가장 어두운 순간에 불쑥 나타나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우리를 지켜준다. 그리고 아이들 생각이 났다. 빨리 회복해서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선생님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살아내고, 견뎌내고, 그럼에도 누군가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받은 그 따뜻함을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