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읽는 안목, 변화의 파도에 맞서는 힘
나의 사회생활의 시작 또한 순탄치만은 않았다.
졸업 후 몸담았던 첫 회사는 정치적 여파로 5년도 채 안 되어 파산했고, 동료들의 꿈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시대의 흐름은 개인의 예측보다 훨씬 빠르고, 때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무렵, 모두가 망설이던 D램 반도체에 과감히 투자한 삼성이 있었다.
그 선구적인 결단이 오늘날의 삼성전자를 만들고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세웠다.
개인의 꿈도, 기업의 운명도 시대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흥망이 갈리는 냉엄한 현실이었다.
국가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다.
개화기,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워 서양 문물을 막아설 때,
일본은 이와쿠라 사절단을 파견해 선진 문물을 체계적으로 흡수하며 경제 대국의 초석을 다졌다.
우리는 과거 일본이 걸었던 저성장의 길을 뒤따르는 듯한 위기 속에서,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변혁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연구비 삭감으로 과학자들이 해외로 떠나는 현실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인재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다음 시대를 준비해왔다.
최근 한국 경제는 주력인 제조업에서 기술 유출과 경쟁력 약화로 중국에 밀리고 있으며,
저출산, 고물가, 부동산 폭등과 같은 위험 신호는 30년 전 일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도성장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와 달리,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 세대는 어떻게 될까.
어쩌면 전쟁이나 또 다른 전염병이 덮칠지도 모르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불안한 환경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혼돈 속에서 아이들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
아이들에게 학교와 학원이 가르쳐주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코로나 시절 꾸준히 등산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며 좋은 습관을 만들었듯이,
‘브랜드 보이’나 ‘마케터 숭’, ‘롱블랙’ 같은 흥미로운 콘텐츠를
함께 보며 세상의 재미있는 인사이트를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게 가꿀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30년간 변하지 않은 줄 세우기식 교육은 아이들을 정해진 틀에 가둘 뿐,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어 내는 유연한 사고를 길러주지 못한다.
진정한 ‘시대를 읽는 안목’은 암기하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깊이 신뢰하고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모두는 각자의 무대를 가진 ‘연예인’이야!”라고 말했다.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게 가꿀 줄 아는 경험이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응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흐름은 이제 제 아이의 진로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왔다.
몇 년 전부터 카이스트(KAIST) 대학원에 다니는 첫째는, 주변 동료들이 더 나은 연구 환경을 찾아 미국과 중국으로 떠나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석사 후 진로를 깊이 고심하고 있다.
한국에 남아 박사 과정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더 좋은 기회를 좇아 외국으로 나갈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여건이 된다면 후자가 더 나은 선택지일 수 있다는 씁쓸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일본이 사절단을 파견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듯이,
삼성이 반도체에서 미래를 보았듯이,
중국이 과학자에게서 다음 시대를 읽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급변하는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
바로 ‘시대를 읽는 안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변화를 읽지 못해 겪었던 나의 실패와 변화에 맞서 성공을 이뤄낸 수많은 사례 모두가 하나의 교훈을 가리키고 있다. 방향 없는 열심은 공허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는 한 걸음이 수백 걸음의 방황보다 낫다는 것을.
이 깨달음이야말로 내가 아이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지 않을까.
내가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아이가 세상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갈 때
길을 밝혀주는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주리라 굳게 믿는다.
부모라면,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지혜를, 어떤 나침반을 준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