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두 세계
아이 둘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 같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나 역시 그랬다.
첫째는 비교적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이야기했고,
자기주장이 뚜렷했다. 반면 둘째는 집안 형편이 어렵고, 아픈 엄마를 둬서인지 늘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난 오랫동안 이것이 두 아이의 타고난 '성격' 차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두 권의 책,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의 『불평등한 어린 시절』과 최다혜 작가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배운 것들』을 읽으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의 성향은 단순히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라온 환경과 부모의 양육 방식이 세심하게 조각해 낸 결과물이라는 것.
특히 '도움을 요청하는 능력'은 개인의 기질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체득된 일종의 '기술'이자 '자본'이었다.
아네트 라루는 ‘불평등한 어린 시절’에서 수많은 가정을 오랫동안 관찰한 끝에,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양육 방식이 두 가지 뚜렷한 논리로 나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는 중산층 가정에서 주로 나타나는 '집중 양육(Concerted Cultivation)'이다.
이 방식의 부모들은 자녀의 재능과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아이의 하루는 학원, 운동, 악기 등 어른이 계획한 활동으로 빽빽하게 채워진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 사용 방식이다.
이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며, 협상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어른의 권위에 질문하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설득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그 결과, 이 아이들은 세상과 제도를 자신의 필요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는
'당연한 권리 의식(sense of entitlement)'을 내면에 키우게 된다.
반면, 노동자 계층이나 어려운 환경의 가정에서는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Accomplishment of Natural Growth)' 방식이 나타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사랑과 안전 같은 기본적인 필요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며, 아이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아이들은 정해진 스케줄 대신 자유롭게 놀며 스스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어른과의 소통은 토론보다는 명확한 '지시'의 형태를 띤다. 아이들은 권위에 순응하고, 어른의 말을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배운다. 아이들은 제도나 권위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자신을 맞추려는 '제약 의식(sense of constraint)'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가 왜 그토록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데 주저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는 부모의 경제적 사정을 눈치채고 있었고, 그 제약 속에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흥미롭게도, '집중 양육'을 통해 길러진 '권리 의식'은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다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성공의 기술과 정확히 일치했다. 최다혜 작가는 저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배운 것’에서, HBS 오리엔테이션 첫 시간에 '부탁하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자 '신뢰의 표현'이라 했다.
HBS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을 3단계로 구조화하여 가르친다.
목표를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요청'으로 만들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도움이 필요한 일을 구분하기
가장 적합한 사람을 전략적으로 찾아내기
이는 단순히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신의 문제를 깊이 성찰하고, 해결을 위한 최적의 경로를 설계한 뒤,
상대방에게 협력을 제안하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다.
'집중 양육'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교사에게 "이 문제는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하며 자신의 학습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전략적 요청'의 기초를 훈련받은 셈이다.
두 아이를 보며 느꼈던 막연한 생각은 이제 명확한 그림이 되었다.
자기주장이 강했던 첫째는 '집중 양육'의 문화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반면, 눈치를 보던 둘째는 '자연적 성장'의 환경 속에서 순응과 자립을 배웠지만,
'요청의 언어'에는 익숙해질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자책이 아닌 희망을 주었다. 아이의 성향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라면,
이제라도 아이에게 새로운 환경과 언어를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엄마한테 이야기 안 해?”
“힘들어 보여서….”
“혼자 판단하지 말고 얘기를 해야 엄마가 알지….”
“바빠 보여서….”
이렇게 둘째는 오빠와 다른 사춘기 전쟁을 치렀다.
아이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아이와 함께 작은 목표를 세우고,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함께 이야기했다.
돌아보니, 나 또한 나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해결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내 아이는 좀 더 나은 환경, 좋은 사람들과 생활하며 성장하길 바랐다. 공부방을 운영하면서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에서 생활하기를 가르쳤다.
"도움 요청하기"는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강력한 '문화 자본'을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