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는 어디에서 배우나요?
재능의 벽 앞에서 좌절한 펜싱 선수가 '포기'를 선언하자, 코치는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대신 '전국대회 8강 진출'이라는 마지막 미션을 건넨다.
이것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었다.
결국 선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8강에 오르고,
마침내 웃으며 자신의 '포기'를 쟁취한다.
코치는 실패가 될 뻔했던 마지막을 '성공의 경험'으로 바꾸어,
새로운 시작의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처럼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여 무언가를 이뤄낸 경험은,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된다.
드라마 속 코치의 지혜는, 도망치듯 회사를 뛰쳐나왔던 20대의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강도 높은 업무, 따라주지 않는 체력. '명예퇴직'이라는 달콤한 탈출구가 생기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표를 던졌다.
일하는 방법도, 관계 맺는 법도 모른 채 허덕이던 전쟁터에서 그저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었다.
동료들이 자신을 갈고닦으며 능력치를 올릴 때,
부모님이라는 안락한 울타리 뒤에 숨어 '결혼'이라는 다음 도피처를 찾았다.
'명예퇴직'은 나의 비겁함을 가려줄 아주 그럴듯한 핑계였다.
물론 내게도 학창 시절, 끈기와 노력으로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냈던 성취의 경험은 있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 믿음만으로 통하는 곳이 아니었다.
노력의 '양'이 아닌, 일의 '방법'을 묻는 곳이었다. 보고서 쓰는 법, 관계 맺는 법, 감정을 관리하는 법…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불문율 속에서 무모한 열심은 번번이 벽에 부딪혔고,
열심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그렇게 외면하고 도망친 삶의 숙제는 20년이 지나 40대 중반,
'건강'과 '생계'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듯 책을 펼쳤고, 그 안에는 내가 애써 외면했던 '놓쳐버린 삶의 흔적'이 가득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달랐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은 같았다.
당시의 난 버텨낼 의지도 없는,
힘든 일이 생기면 상황만 '탓'하고 '엄마, 아빠'를 부르짖던 어린아이였으니까.
부모라는 세상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철없는 딸은,
엄마의 투병과 함께 닥쳐온 진짜 시련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성장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을 돌아 결국 '자기 계발'이라는 출발선에 다시 섰다는 사실에 낯 뜨거운 수치심이 밀려왔다.
'굳이 그렇게까지…'라며 노력하는 이들을 비웃던 젊은 날의 오만함을 질책했다.
그리고 마침내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오는가'라는 원망을 멈췄다.
모든 것이 과거의 내가 뿌린 씨앗이었음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다른 방향으로 삶의 핸들을 돌려야만 했다.
다행히 내게는 몸에 밴 '끈기'와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부모님의 뒷모습에서 배운
'성실한 삶의 태도'라는 내면의 힘이 남아있었다.
이제 나는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공부를 원래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공부하기 싫은 너희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단다.
왜 하기 싫은지, 그 마음부터 함께 들여다보자."
하지만 마음의 힘은 책상 앞에서만 길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공부가 결국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감정싸움이자 체력 싸움임을,
약한 체력으로 무너졌던 20대의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책상 밖으로 이끌어 운동을 시키고, 주말마다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헐떡이며 한 걸음씩 내딛는 경험은 그 어떤 이론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는 법,
정상에 올랐을 때의 짜릿한 성취감,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 때 곁에서 함께 땀 흘리는 친구의 소중함을.
산에서 내려온 아이들은 책상 앞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의 무게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단순히 공부 기술이 아닌, 스스로 길을 찾는 힘을 전하고 싶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혼자 부딪쳐야 했던 나의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지름길이 아닌 '지탱력'이 되기를 바랐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끝까지 해내는 끈기, 그리고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가는 힘.
이것이 내가 진짜 전하고 싶은 공부였다.
힘들다고 피하면 언젠가 그 문제는 더 큰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도 공부방에서 '안 돼, 못 해!'를 외치는 아이들을 그들만의 '8강'으로,
그리고 '정상'으로 이끌기 위해 함께 땀 흘린다.
시작한 싸움에서 목표를 이뤄내는 경험, 즉 '끈기'라는 마음의 자산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포기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꾸어 삶의 힘을 키울 것인가?
10대 시절에 온몸으로 체득한 이 마음의 무기야말로,
아이들이 평생을 살아갈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