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이유는 해가 뜨고 지는 원리를 모른다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늘이 변하는 것에 따라 저의 눈에 비치는 세상의 모습도 시시각각 변했습니다. 어린 저는 아침하늘과 함께 변해버린 집의 풍경에 적응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방문으로 다가갑니다. 동그란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엽니다. 그러면 어젯밤과는 달라진 모습의 거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거실의 창에서 하얀 햇빛이 쏟아지고 그 뒤로는 파랗게 변해버린 하늘이 보입니다. 분명 어젯밤에 잠들 때까지만 해도 하늘색은 검은색이었는데, 세상이 또 변했습니다.
사뭇 긴장된 마음을 갖고 거실로 걸어 나갑니다. 거실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빛의 옆에 쪼그려 앉아봅니다. 부엌에 서계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침밥을 준비하느라 변해버린 집안의 냄새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합니다. 다행히 조금 있으니 금방 적응이 됩니다. 마음을 조금 풀어봅니다. 아침밥을 먹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엄마가 챙겨준 외출복을 입습니다. 까슬거린 옷의 감촉에 마음이 약간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책가방까지 제 어깨를 누르기 시작하면 학교를 가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현관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계단들이 줄지어 보입니다. 또 냄새와 온도가 달라졌습니다. 서늘한 시멘트의 기운에 다시 마음속에 긴장감이 일렁입니다. 아빠의 손을 잡고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옵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저와 하늘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본 하늘과는 큰 차이가 없음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학교로 갑니다.
학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저의 자리를 찾아 가만히 앉아 마음을 정돈합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많은 변화가 물 밀려오듯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미리 준비를 해 둬야 합니다. 학교 종소리에 따라 교실의 소리가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수업 4개가 끝나니 선생님께서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로 가라고 하십니다. 저벅저벅 걸어 들어간 급식실의 풍경은 폭주하여 저에게 달려듭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저마다의 말소리와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섞여서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급식 아주머님께 음식을 배식받습니다. 엄마가 해준 음식과는 모양도 냄새도 다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생소합니다. 바짝 긴장합니다. 빈자리를 찾아 앉아보니 온도와 습도가 저에게 달라붙는 느낌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제가 적응해야만 하는 것들 투성인 이 공간은 친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수업 2개를 더 듣고 학교가 끝났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기분이 약간 설레어집니다. 친구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친구와 논다는 즐거움은 저의 천진난만함을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저를 지키기 위해 하루 종일 사투를 벌이던 두려움이 드디어 잠을 청합니다. 하늘을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저는 공기에서 변화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의 끝이 주황색으로 물들어져 있습니다.
‘주황색이다…’
두려움이 아쉬운 잠을 뒤로하고 제 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늘에 주황색이 보이기 시작하면 하늘은 앞으로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색을 거치고 검은색으로 변할 거라는 것을 알기에 두려움이 솟아오릅니다. 단순히 깜깜한 밤이 된다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변하는 속도만큼 제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 무서운 겁니다. 제가 다시 적응해야만 하는 것들이 잔뜩 늘어나는 것이니까요.
주황색이 제 머리 위까지 번지면 친구와 인사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가는 중에도 하늘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어서 집으로 가서 익숙한 것을 찾아야겠습니다. 계단을 혼자 하나하나 올라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가 반겨줍니다. 엄마의 뒤로 보이는 집의 풍경은 아침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얀 햇빛이 들어오던 거실의 창은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고 검게 변해 있습니다. 그 대신 천장에서 가짜 햇빛이 퍼집니다. 가짜 햇빛덕에 집안은 아침보다 밝은 듯합니다. 방구석에 책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책가방이 무거웠던 건지 내려놓았는데도 어깨에서는 아직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저녁밥을 먹고, 목욕을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부드러운 잠옷의 감촉에 기분이 약간 편안해집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변해버린 방 풍경에 적응해 봅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포근한 이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촉입니다. 그다음으로 공기에서 낯선 냄새가 섞여 있음을 알아챕니다. 냄새를 쫓아가니 침대 옆에 있는 창문이 보입니다. 까매진 창문의 틈으로 밤공기가 들어온 것입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웃집의 텔레비전 소리도 함께 들어옵니다.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들어보겠다고 집중하다 보니 점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잠에 들어야 하는데 자고 싶지 않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또 세상은 변해있을 테니까요. 애써서 적응한 것들을 또 빼앗겨야 하니까요. 빼앗기기 싫어서 한참을 뒤척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