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산란, 빛의 미궁

by 고백

새벽의 칠흑 같던 세상에서 갑자기 ‘철컥’하고 전등불 밝히듯 갑자기 빛이 내리쬔다. 마치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내리쬐는 빛으로 다가가 본다. 저 빛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서 다가가 본다. 다가간 곳은 넓은 물이 있다. 이 물은 흔들림 없어 보인다. 완전해 보인다. 빛의 끝은 물의 중심에 있다. 물을 건너갈 수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수면을 팔로 쓸어본다. 다소 차갑지만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성큼성큼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고요하던 물이 나를 따라 흔들린다. 점점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몸을 눕혀 수면 위로 누워 헤엄을 친다. 수면 위를 미끄러져서 물의 중심으로 다가간다. 가까워질수록 물이 따뜻해진다. 물의 중심에 도착하니 온 세상은 빛으로 가득해 보인다.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빛에 내 마음은 따스해진다. 빛의 아래에서 내가 따뜻해진다.


물속에 있는 나의 발끝에 빛이 닿는 것이 보인다. 머리를 숙여 몸을 물속으로 넣어본다. 파란 물속에서 하얀빛의 줄기들이 내려 꽃혀 있다. 이 빛은 내가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듯하다. 다가가서 잡아본다. 손을 뻗어 빛의 줄기를 잡으려 했는데, 부서진다.


빛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잘히 부서진다. 내 몸에 닿은 빛들이 하나하나 부서져 작은 파편이 된다. 부서진 파편들은 나를 따라 헤엄친다. 작은 물고기 떼처럼 내 주변을 감싼다. 사각사각 파편들이 서로 부딪힌다. 작게 부서져 나눠졌지만 따뜻함은 그대로이다. 점점 늘어나는 파편들이 어느새 신비로운 구조를 만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미궁처럼 보인다.


부서진 빛이 미궁을 만들었다. 사면에서 반짝거리는 빛에 눈이 부시다. 빛 사이사이를 헤엄쳐 비집고 들어간다. 피부에 스치는 미궁의 벽이 포근하다. 이 미궁은 빠져나갈 곳이 아니다. 내가 있을 곳이다. 그저 여기를 유영하면 그만인 곳이다. 이곳저곳을 소풍 온 듯 돌아다니면 그만인 곳이다.


하늘이 웃는다. 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하늘이 아이처럼 웃는다. 웃음소리를 따라서 빛들이 구조를 부수고 일렁인다. 웃음소리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자 빛도 따라 들어온다. 빛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은 뜨거워졌다. 그리고 빛의 무게가 무거워 나는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깊어질수록 세상은 점점 어두워진다. 내 마음속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의지해본다.


내 직감이 말한다. 나는 이렇게 점점 가라앉아 물의 바닥에 닿을 것이고, 세상은 어두워져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곳에서는 내 몸은 점점 약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해야 하는 내 일이 무엇인지 안다. 내 몸이 약해지기 전에 내 가슴속에 있는 빛을 끌어 모아 눈을 통해 흘려보내는 것이다. 빛을 다시 세상으로 보내 이 따뜻함이 타인의 가슴에도 깃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빛의 방울이 흐르고 나면 이제 내 눈은 하얗게 변할 것이다.


이내 곧 등 뒤로 물의 바닥에 닿았고 세상은 어둡다. 이윽고 물이 다시 고요해졌다. 내가 점점 약해진다. 어서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빛들이 방울방울 수면 위로 올라간다. 차가운 물이 내 몸의 열을 식혀주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