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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바미 Aug 04. 2019

대화의 형태 2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조차.

 간혹 누군가랑 대화를 할 때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질 때가 있다. 친한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쿵짝이 맞아떨어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 말 이해를 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이 예민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다고 치부해 버리기도 했다. 과연 나는 성숙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얼마 전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와의 대화를 되 집어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결핍을 말로 풀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여자 셋이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후로 처음 숙박을 하는 여행을 갔을 때였다. 한 친구랑 기차에서 나란히 앉아서 가는데 문득 어색함을 느꼈다. 항상 셋이 이야기했기에 1대 1 대화가 어색하게 느껴졌으리라.

 어색함을 깨기 위해 아이의 안부를 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친구는 아이가 키가 평균보다는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키가 작은 편이었기에 더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작지만 내 자식에게 작은 키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었던 걸까 대뜸 작아도 괜찮지 않냐고 되물었다. 키가 작건 크건 자신의 대한 자신감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모습이든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키는 중요하지 않다고. 현실적으로 크고 싶다고 크는 건 아니기도 하고.



 그때는 친구를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교습소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학생 중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아이들이 몇 명 있는데 생리를 시작하면 성장판이 빨리 닫힌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을 했다. 생리를 한다고 성장이 멈추는 건 아니라고 위로 함과 동시에 친구에게 했던 말을 해줬었다.

 학생에게 말하듯 똑같은 말을 친구가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잘 모르겠다. 친구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자신감은 꼭 필요한 거냐고 반문했고 어영부영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그 후 친구는 요즘 빠져있다는 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대화는 캐치볼 같은 것이다. 던지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하거늘 서로 던지기만 하면 대화는 연결지 않는다. 친구가 던지는 공을 받는 대신 새로운 공을 던져 버렸기에 우리의 대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서로를 토끼, 곰등 동물로 불렀는데 그게 버릇이 되서 부끄럽지만 삼십대 중반에도 그렇게 부른다. 친구의 딸은 나를 토끼 이모로 알고 있다.



 친구는 자신의 결핍을 딸에게 투영시켰다. 그렇다고 친구가 뭘 어떻게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순간의 표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욕구를 해소한다.

 나의 결핍은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친창에 인색했던 엄마, 무뚝뚝하고 무서웠던 아빠, 공부를 곧 잘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받았던 언니와 부모님이 아끼는 남동생 사이에서 자격지심 가득한 아이로 유년기를 보냈다. 스스로를 못 살게 구는 습관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게 했기에 자신감은 나의 큰 결핍이었다.

 


 내가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친구의 딸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사랑받는 존재로 인식할 것이다. 친구를 위해서 했다고 생각한 말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고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부끄러웠다. 한 번은  날아오는 공을 사뿐히 받아줘도 괜찮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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