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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Nov 18. 2022

아침 일상

여덟 살 아이의 가을(2022.09-2022.11)



전쟁 같은 사랑



등굣길은 전쟁이다.


아주 조용한 물결처럼 지나갈 때도 있고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도 있다. 아이를 구슬려 평화롭게 등교 준비를 마치기도 하고,   단단히 화가  상태로 팽팽하고 아슬하게 학교에 가기도 한다.     번은 운이 아주 좋은 , 다른  번은 망한 기분이 드는 , 나머지 여덟 번은 그럭저럭 지나가니  또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오늘은 망한 기분이 드는 날이다. 이런 날은 연달아 온다. 어제도 등굣길이 평탄치 않았는데, 정문 앞에서야 겨우 기분을 풀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오늘은 아이의 얼굴도 보지 않고 그냥 보내 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 가슴이 답답했다. 엄마한테 함부로 말하지 . 엄마가  말을 모두 들어주는 사람은 아니야.  말을 내뱉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 현관을 나서며 아이에게도 제발 아무 말하지 말라고, 네가 말하면 엄마가 화가 난다고, 경고를 했으니까. 나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


언제나 반복되는 이야기다. 학교 갈 시간이 됐으니 빨리 아침 먹고 씻고 준비하라는 말. 물론 아이는 듣지 않는다. 씻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나는 더 재촉한다. 이제 곧 씻어야 해. 책은 그만 읽고 씻자. 안 그러면 늦어.


루틴을 만드는  효율적이라 해서 나름 루틴도 정해 놓았다. 아침마다 듣는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가 나오면 바로 씻으러 들어가기. 보통 7시에 일어나 8 즈음 아침을 먹으니까, 그다지 빡빡한 일정도 아니다. 8 25 정도, DJ 게스트의 대화가 끝나고 라디오에선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나는 아이에게  번이고 씻으라고 얘기하지만 아이는 시큰둥하다. 아예 아이를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가면, 그냥 따라오는 시늉만 해도  나을  같은데, 아이는 정말 태연하고 느릿느릿하게 움직인다. 눈치 없이 장난을  때도 있다. 펭귄처럼 뒤뚱뒤뚱 걷기도 하고,  허리를 감싼  매미처럼 대롱대롱 매달리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짜증이 치민다. 이 와중에 뭔가 조금이라도 자기 기분에 거슬리면  목소리를 다해 소리치는 아이가  마음에 불을 지른다. 내가 양치질을 조금 세게 했다고 아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그럼 네가 양치질하던지. 대신 빨리해.  그럼 학교 늦어."
"알았다고!"
"소리 지르지 말고 친절하게 말할래? 엄마가 아까부터 계속 준비하라고 얘기했잖아. 엄마지금 화가 많이 나지만 참으면서 얘기하고 있는 거야."
"나도 참고 있어. 나도 참아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라고."
"이게 참는 거니? 엄마는 너처럼 소리 지르지 않아."

나는 아이가 보기 싫어 안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는다. 아이도 참지 않는다.  

"방문은 왜 닫아?"  
"널 보면 더 안 좋은 소리가 나올까 봐 그러잖아. 오늘은 그냥 너 혼자 학교가."
"싫어. 학교 혼자 안가. 엄마랑 같이 가."

아이가 다시 소리를 지른다.

"소리 지르지 말고 말하라고. 소리 지르면서 말할 것 같으면 차라리 아무 말하지 말라고."

늘 이런 식이다.


너는 하나도 지지 않는구나. 너는 절대 지는 법이 없구나. 자꾸 괘씸한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엄마니까 화는 풀고 헤어질  그랬나, 후회도 밀려온다. 오늘도  마음은 나머지 공부를 하듯 학교에 남아 감정 뒤처리 중이다.


마음은 무겁지만 행동은 날렵하게! 집에 오자마자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안치고 빨래를 널고 김치를 썰어 볶음밥을 했다. 아직 오전 10시, 나는 한 접시 가득 김치볶음밥을 먹고 우유를 데워 밀크티를 만들어 마신다. 네가 오면 다시 힘내 너를 반겨야지. 후회는 하더라도 미련은 남기지 말아야지.



그렇게 오늘 하루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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