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의 가을(2023.09-2023.11)
며칠 전 분당서울대병원에 다녀왔다.
반년에 한번 방문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무엇을 물어볼지 준비하곤 했다. "사회성 관련 수업은 일주일에 몇 번 시키는 게 나을까요? 치료를 더 늘릴 필요가 있나요?"와 같은 질문과 "영어 학원을 보내도 괜찮을까요? 한 달 정도 장기 여행을 가도 무리가 안 될까요?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과후 학교 같은 곳은 어떤가요?"와 같은 질문. 때때로 "아이가 좀 산만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기 조절력이 부족한데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같은 질문을 던졌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특수 교육 대상자 신청을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도 했었다.
몇 가지 정리하자면 사회성 관련 수업은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얼마나 충족시키는가에 중점을 둬야 하고, 영어 학원은 Yes, 특수 교육 대상사 신청은 No. 언어적 강점이 있으므로 그 능력을 키워줘야 하며, 특수 교육 대상자 신청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산만한 면과 자기 조절력이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원래 이런 경향성을 가진 아이라고 설명했다. 아직까지 문제가 될 만큼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 외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대체적으로 방향은 비슷했다.
"아이와 의논해 보고 하세요. 그 과정에서 아이가 좋아하면 할 수도 있고요, 꼭 해야 한다면 이유를 설명하시고요. 그런 과정 자체가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 병원 방문을 앞두고 별다른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요즘 아이가 안정적이라고 느낀다. 아침마다 늑장을 부리는 것도 여전하지만, 최근 등교 시간을 5분가량 늦추기도 했고, 그 시각 같은 반 친구를 만나는 경우도 많아 요즘은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기 스스로 시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영어 숙제를 하는 중, 한 문제 틀릴 때마다 짜증을 내던 아이는 이제는 방문을 닫고 숙제를 한다. 방 안에서 아이가 혹시 딴짓을 할지 몰라 엄마로서 답답한 마음도 들지만, 몇 분 정도는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친구들과 자주 다투고 담임 선생님께 이르고 또 같이 놀고 하는 과정은 변함없다. 다만 날씨가 서늘해지고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 수가 늘면서, 놀이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횟수가 줄었다. 자연스레 이들을 향해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일도 줄어들었다. 단순하게 보면 아이도, 나도 사회적 관계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에 덜 노출되고 있다.
"아이에 대해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을까요?"
"특별한 건 없어요. 요즘 아이는 안정되어 보여요."
내가 대답했다.
"그럼 진료는 1년에 한 번 해도 괜찮을 것 같네요. 3학년 때 봅시다."
나는 가끔 '완치'에 대해 생각한다. 자폐 스펙트럼은 질병이 아니므로 완치란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이란 단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한때 '완치'를 바란 적이 있다. 나는 궁금하다. 내 아이가 지금 자폐 스펙트럼 검사를 받는다면, 아이는 여전히 자폐 스펙트럼으로 진단받을까, 아닐까? 사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분명 다른 점이 있고, 나는 그 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 다름을 유독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앞으로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다. 아마 힘든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춘기를 앞두고 이 다름이 얼마큼 두드러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지금은 자폐 스펙트럼에서 자유롭고 싶다. 프레임에 갇혀서 내 아이를 판단하지 말고,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다.
너와 나, 사람대 사람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