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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Oct 20. 2023

잘 우는 법

아홉 살 아이의 가을(2023.09-2023.11)




주차 중에 다른 차를 살짝 박았다.


다행히 번호판 플라스틱 부분만 깨졌고 수리비를 드리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발달 센터가 있는 건물의 지하 주차장, 역시 같은 건물 내 요양 시설에서 시간제 강사로 일하는 남자 선생님의 차였다. 선생님과 함께 내려온, 머리 희끗한 할머니가 이것저것 조율을 해 주셨다. 선생님이 순한 분이라 다행이다. 애기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이를 데려다주다가 사고가 났다는 내게 선생님은 대뜸 아이는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그전에 차에서 먼저 내렸다고 대답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가 참 곱네요.” 나는 감사하다는 의미로 머리를 숙였다


사실 나는 곱다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내내 큰 소리가 났으니까. 아이는 울었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일이야 다반사지만 마침 이 날은 아이의 생일이기도 했다. 생일잔치는 며칠 전 친구들을 초대해 한바탕 치른 상태였다. 생일 당일 아침을 남은 케이크 한 조각으로 때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저녁은 친정에 가기로 했었다. 미역국과 아이가 좋아하는 생선, 그리고 아마 초코케이크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하굣길,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학교에 갔는데 친구가 함께 걸어 나왔다.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

“얘가 자꾸 저를 괴롭혀요. 죽어 볼래?라고 말하고, 계속 그래요.”

정확한 단어는 못 들었지만 ‘죽음’이란 단어를 언급한 건 확실했다. 평소에도 죽여버릴 거야, 는 말을 하곤 하니까.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아이가 부르르 떨며 신발주머니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신발주머니에 내 어깨가 맞았다.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아이에게 멀리 떨어져 걸으라고 차갑게 말했다.


차에 오르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이는 그 친구한테 한 말이 아니라 A라는 전혀 다른 친구한테 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친구들과 유령 잡기 게임을 하는데 A가 자신에게 안 좋은 무기만 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이든 친구에게 "죽어버려"는 말은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걔 때문에 내가 계속 지는데 어떻게 해?”

“재미있으려고 같이 노는 거잖아. 지는 게 싫으면 그냥 같이 놀지 마.”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걔랑 놀지 않으면 나는 놀 친구가 없단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는 A가 자신을 자꾸 울게 만든다고 털어놨다. “남잔데 왜 울어?”라며 놀린다고도 말했다.

“우는 건 아무도 해치지 않아. 우는 것보다 더 나쁜 건 다른 사람 죽으라고 말하는 거야.”

나는 아이에게 차라리 우는 게 낫다고 대답했다. 친구가 계속 놀리면 상담실에 가서 울라고도 덧붙였다.  

“엄마도 학교 다닐 때 많이 울었어.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놀아 주지 않아서, 그래서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어. 그런데 우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오히려 울지 못하면 병이 생겨. 대신 크게 울지 말고 조용히 우는 법을 배우자.”


내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잘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에게 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힌다면 가장 좋겠지만, 화가 나서 '죽어버려'라는 말만 떠오른다면, 그 말이 버릇처럼 자리 잡는다면, 그냥 울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울음은 방해가 될지언정 누군가를 해치지는 않으니까. 그 울음이 조용히 흐르는 눈물이라면 더욱.


가벼운 접촉 사고를 낸 뒤, 머리 희끗한 할머니의 “엄마가 참 곱네요.”라는 말을 듣고 나는 그만 울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누구나 울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아이가 외롭지 않았으면..
생일 축하한다.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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