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의 가을(2023.09-2023.11)
현재 아이가 듣고 있는 치료적 수업은 두 가지다.
감각통합운동과 인지, 놀이 선생님 두 분이 네 명의 아이를 이끄는 사회성 그룹 수업. 센터 수업 주 2회에 줄넘기와 축구, 피아노, 미술, 숲 체험 만으로도 일주일은 금방 간다. 내년에 3학년이 되는 만큼 이번 겨울방학에는 감각통합운동 수업을 정리하려고 한다.
센터 수업은 대부분 학령기 전 아이들에게 집중된다. 아마도 만 3살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인 만 6살 정도까지. 센터에서 만난 엄마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경우 센터를 정리하곤 한다. 초등학교 적응은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의 바람 중 가장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고비를 넘긴 다음 목표는 아마도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 조금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면 학교 폭력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내년이면 3학년, 나는 학교 폭력에 대해 생각한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된다면 내 아이는 가해자에 가까울까, 피해자에 가까울까? 아마 둘 다 해당할 것이다. 아이는, 그것이 설령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순간순간의 성난 목소리로 여러 아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참지 못하는 한 아이가 내 아이를 몰아세울 수도 있겠지. 아이를 향한 무시와 빈정거림이 다른 아이에게 전염돼 나가면, 아마도 왕따라는 환경이 조성되려나? 여기에 누군가 지속적으로 내 아이에게 물리적 해를 가한다면, 학교 폭력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내 아이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내 아이가 피해자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가끔 엄마인 나조차도 아이에게 뭔가 말하려고 할 때마다 움추러들곤 한다. 아이는 내 말에 대꾸하지 않거나 버럭 짜증을 내며 화를 내곤 했다. 이 두 반응 모두 마음에 들지 않다. 지겹다. 나는 아이에게 요구를 할 때마다 '이걸 꼭 지금 말해야 하나?' 유예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가 큰 소리를 내면 나도 상처를 받는다. 내 몸 곳곳에 생채기가 난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적이 된다. 나는 자꾸 뒤로 물러선다. 아이에게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다. 하물며 엄마도 이러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아마 피하고 싶을 것이다. 이상한 아이라고 수군대고 싶을 것이다. 어울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가해자라는 이름에서 자유로우려면,
다른 이를 향한 무자비한 짜증과 화를 멈춰야 한다.
몇 달 전 지인 추천으로 센터 상담을 받았다.
지인의 아이가 센터 수업을 1년 듣더니 산만함이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지금 하고 있는 수업 외에 더 늘리고 싶지 않은 결심은 확고했으나 결국 새로운 센터에 방문해 상담을 받은 이유는, 이게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지 못한다. 성난 목소리가 훅 튀어나온다. 자기 조절력만큼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
상담을 받은 센터에서는 아이의 문제를 우뇌와 좌뇌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했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웩슬러 지능 검사에서 좌뇌와 우뇌 기능차가 20점 가량 되었으니 이 말이 완전히 틀린 소리는 아니다. 상담을 마친 후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센터를 구글 로 검색했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이 프랜차이즈 업체는 거짓, 과장 광고로 시정 명령을 받았으며, 좌뇌와 우뇌의 불균형을 줄이는 뇌훈련을 통한 치료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의사의 글이 덧붙여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치료 방법에 대한 여러 정보를 접했다. 집중력 강화에 좋다는, 뇌파를 활용한 훈련인 뉴로피드백, 청각 통합 운동 중 하나인 베라르, 전전두엽 부위를 자극하는 TMS 등 이름도 낯선 여러 방법이 떠돌아다닌다. 현재 감각통합운동을 하고 있으나, 이 또한 담당 전문의가 권한 수업은 아니었다.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완치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아이도 힘들게 하고 나 또한 힘들게 만드는 몇 가지 증상을 고치고 싶은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쯤에서 나는 그 어떤 새로운 것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앞으로도 해야 할 것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치료적 개입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 받고 있는 수업에 집중하면서. 언젠가 이것도 정리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