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의 가을(2023.09-2023.11)
현직에 계셨던 두 분의 선생님이 공동 작업한 책 "교실에서 별을 만나다"를 읽고 있다.
책을 읽던 중 여러 번 멈춰 같은 문장을 공들여 읽었다. 그날 마침, 차를 타고 피아노 학원에 가는 길 아이와 심하게 다퉜다. 이유는 변함없다. 아이가 사소한 일로 짜증을 냈고 나도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가 폭발했다. 운전을 하며 잔소리를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학원 앞에 차를 정차했을 때, 아이가 차문을 열며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아무 말 안 하네?"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자동차 문을 쾅하고 닫았다. 나는 학원으로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서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말에 바로 대꾸하지 않으면 되레 화를 내곤 했다. 적반하장. 화를 참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얘기해? 나도 그렇게 나쁘게 얘기할까?"라며 불을 붙이는 식이다. 한숨 쉬는 나를 보며 아이가 자동적으로 "미안해."라고 사과하지만 그 "미안해"에는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엄마는 바로 용서해야 해'라는 당연함이 묻어 나왔다. 그런 아이를 향해 나는 말하곤 했다. "부탁을 해야 하는 거야. 명령하듯 말하지 말고, 친절하게 말해야 하는 거야."
우리의 문제는 늘 반복된다. 변함없다. 책에도 이와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문제 행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 행동은 지속되기 마련이며, 이 행동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변화가 필수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한 방법 몇 가지. 이론적으로는 아이에게 공감해 준 뒤 상황을 설명하고, 행동의 한계를 정해주는 방법을 지향하지만, 나는 대체로 타임 아웃이나 과자나 동영상 같은 보상을 제거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종종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너 그렇게 짜증내면 오늘 친구랑 놀이터에서 못 놀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행동을 조절할 수 없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나는 항상 회유와 협박을 오가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다짐했다. 아이에게 구체적인 행동 언어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지켜야 할 원칙을 정해 놓긴 했다. 친구를 때리거나 밀거나,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말기. 말을 할 때에는 1단계 친절하게 말했다가 그게 아니면 2,3 단계로 높여 말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어른에게 알리기. 마지막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였다. 책을 읽은 뒤 이 규칙을 바라보니 아이에게 어려울 수 있겠다 싶다. 규칙은 긍정어로 해야 한다는 내용에 맞춰 살짝 수정해 본다.
1. 다른 사람이 “싫어.”, “하지 마.”라고 말하면 하던 행동을 멈추기.
2. 부탁을 할 때에는 “해줄래?”, “해주면 안 돼?”라고 말하기.
3.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속상해.”, "화가 나."라고 말로 표현하기.
여기에 "4. 엄마가 지시하면 바로 대답하고 행동에 옮기기"와 "5. 다른 사람이 화났을 때에는 가만히 기다리기"를 덧붙였다. 4번은 아침 등교 시간이나 학원에 갈 때마다, 5번은 화를 참고 있는 내 앞에서 계속 화를 돋우는 말을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를 앞에 앉혀 두고 지켜야 할 규칙을 가르쳐 주었다. 다섯 가지다 보니 말로 설명하기에도 조금 벅찬 느낌이 들었다. 4번과 5번은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란 생각도 스쳤다. 결국 세 가지만 집중하기로 한다.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 환경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하고 있다. 아이와 나에게 맞는 루틴을 만드는 게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이를테면 숙제하는 시간, 동영상 보는 시간, 씻고 잠자는 시간 같은 것들.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 가면서, 천천히 꾸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