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의 가을(2023.09-2023.11)
지난 9월 4일, 나는 체험학습을 쓰지 않았다.
체험학습을 쓰는 사람이 주변에 몇 명 있긴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오랜 친구는 공교육 멈춤의 날에 병가를 쓰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절박하다고.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또 다른 친구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체험학습을 썼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아무런 고지가 없었다. 몇 엄마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뿐이었다. 나는, 나이 지긋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집회 참여를 위해 병가를 쓰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리고 9월 4일, 아이는 평소와 똑같이 학교에 갔다.
솔직히 나는 이 일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다. 시니컬한 면도 없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거의 없었다. 대신 나를 온갖 방패로 무장시켰다. 선생님이 아이의 남다름을 인지하면 바로 특수교육 대상자 신청을 해야지.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면 대안학교에 보내야지. 대안학교도 안되면 이민이라도 가야지. 학교 폭력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아마도 아이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되겠지만, 학교 내에서 해결을 바라지 말고 그냥 숨어버려야지. 혹시 가해자가 된다면, 바로 학교에서 뛰쳐나와야지. 어딘가로 도망쳐야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내 대처는 대단히 수동적이었다. 한마디로 "그곳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가자."였다. 남다른 아이를 키우는 선배 엄마들에게 듣던 워딩. "학교에 기대하지 마세요. 학교는 문제를 숨기려 해요. 그 과정에서 학부모가 상처를 받아요." 정작 문제는 아이가 학교 외에 갈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다는 데 있었다. 대안학교, 시골의 작은 학교, 해외의 국제학교, 이마저 안된다면 홈스쿨링.
등교를 준비하면서 학부모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엄마에게 전화를 받았다. 학교 멈춤의 날로 너무 많은 선생님이 병가를 내면서 학부모 지원이 급하다는 메시지였다. 오전 8시 20분. 다급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2학년 다섯 반 중 세 반의 선생님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5, 6학년의 경우 거의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가 2학년이라고 말했더니, 내게 2학년 한 반을 맡으라고 했다. 다행히 내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정상 출근을 했고, 내 아이가 있는 반을 맡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40분까지, 5교시 동안 나는 2학년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있었다. 1교시는 동영상 교육으로 마무리되었고, 2교시부터 5교시까지는 담임 선생님이 미리 준비한 유인물로 활동을 했다. 유인물 활동만으로는 턱없이 긴 시간이었다. 중간에 시간이 남는 아이들은 독서를 한 뒤 독서 기록장을 썼고, 그것도 다 한 아이들은 다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있구나 생각을 했다. 물론 내 눈에는 산만한 아이, 충동적인 아이, 느린 아이, 예민한 아이가 들어왔다.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유인물을 가장 늦게, 쉬는 시간까지 앉아서 푸는 아이. 역시 유인물도 다 풀지 못했지만 다른 아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사사건건 간섭하는 아이. 앞에 앉은 아이의 다리를 일부러 찼으면서도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아이. 그중 단연 눈에 띈 아이는 1교시부터 목이 아프다고 보건실에 왔다 갔다 하던 여자 아이였다. 그 아이는 유인물도 중간에 풀다가 포기해 버렸다. 손이 아프다는 이유였다. 그런 아이가, 급식 시간 동안 "식판 깨끗이 정리하기"가 쓴 피켓을 들고 있겠다고 자원했다. 피켓을 드는 게 엄청난 권위라도 되는 듯 여러 명이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아이가 제비 뽑기에 당첨되었다. 나는 다행의 한숨을 내쉬었다.
급식을 먹은 뒤, 아이가 급식실 벽면에 서서 "식판 깨끗이 정리하기"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급식을 다 먹은 뒤였고, 이제 교실로 올라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 아이는 2학년 모든 반이 다 먹을 때까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아이를 두고 먼저 교실로 올라왔다. 뒤늦게 교실로 올라온 아이가 내게 "2학년 아이들이 한 두 명 남아 있었던 던 것 같아요."라고 걱정스레 말을 걸었다. 나는 괜찮다고, 우리 반 아이들은 다 올라왔다고 말을 해주었다.
고작 하루, 5교시만 같이 있었는데도 아이들의 성향이 대충 파악되었다. 그 사실이 좀 충격적이었다. 이 안에서 내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내 아이가 "딱 아홉 살 평범한 남자아이 같다."는 평을 남겼다. 그저, 다행이다.
몇 가지 덧붙이자면....
급식 시간, 나를 알고 있는 아이의 같은 반 친구들이 내 옆을 지나가며 인사를 건네었는데도, 내 아이는 내가 보이지 않은 듯 나를 모른 척 지나갔다. 급식을 받자마자 자신이 가야 할 자리로 향했다. 바로 옆, 아이가 나를 스쳐 지나갔다. 긴장해서 나를 못 봤거나, 아니면 생각이 없거나 그중 하나다. 엄마가 학교라는 공간에 함께 있는 일이란 대단히 낯선 것일 테니까. 어떤 면에서는 나를 찾아와 알은체 하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도 든다. 공적인 자리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 다소 건조하더라도 그게 우리 방향에는 맞다. 지금 그 자리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 예외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