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의 여름(2023.06-2023.08)
아이에게 새로운 말버릇이 생겼다.
이놈아. 말 끝에 이 말을 붙인다. 기분 좋을 때 그런 것은 아니고, 상대에게 뭔가 불편한 감정이 들었을 때 이놈아,라고 말한다. "알겠거든. 이놈아!" 같은 식이다. 워낙 예민한 데다 아주 미세한 거절의 뉘앙스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다로움 때문에 나는 아이에게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놈아라는 말을 듣는다.
주차장에서 자동차 문을 열 때, 혹시라도 옆차에 닿을까 봐 "문, 살살 열어."라고 하는 말에도 "알겠거든, 이놈아!"라고 대답한다. 황당하다 못해 황망하다. "이놈아는 나쁜 말이야.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말은 부메랑과 같아서 네가 나쁜 말을 하면 다시 나쁜 말로 돌아올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계속되는 이놈아에 나는 지친다. 한숨이 나온다. 아이는 얼굴 찡그리는 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왜 그래?" 날카로운 소리로 쏘아붙이거나, 대단히 습관적으로 "미안해"라고 사과한다. 나는 이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 "나중에 얘기하자." 내가 말하면 아이가 다시 화를 낸다. "그래! 알았어. 나도 기분 나쁘다고!"
아이의 사과를 단번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한 나는 아이를 향해 "엄마 기분이 나쁘니까, 좀 괜찮아지면 얘기하자." 정도로 대응한다. 주차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특별한 목적 없이 핸드폰을 보거나 노트북을 켠다. 뉴스를 검색하기도 하고 브런치 글을 읽기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나 홀로 시간을 갖는 것이 다운된 기분을 다독이는 방법이다. 옆에서 또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보란 듯이 내가 있던 방의 문을 쾅 닫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거실에 앉아 책을 읽거나 블록을 만지기도 한다. 아이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몇 분 뒤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할까? 나쁜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나는 요즘 이 말을 반복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아이가 또다시 화를 내지는 않을까? 내 말을 아이가 조용히 들어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결국 아이와 떨어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말버릇에 대응하는 게 지친다.
오랜 친구가 조선미 정신의학과 교수의 동영상을 권했다. 요점은 공감은 하되 행동은 통제하는 것. 요즘 육아는 마음 읽기에 집중되고 행동 통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는 쓴소리였다. 나는 사실 공감도 못하겠고 행동을 통제하는 것도 못하겠다. 그저 너와 나를 분리하고 싶다. 이럴 땐 시간이 답이다.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
가슴 막히는 요즘...
이 무더운 여름은 언제 지나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