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리 Aug 04. 2023

실내화 가방이 던져 올린 공

아홉 살 아이의 여름(2023.06-2023.08)




아이가 실내화 가방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아이에게 실내화 가방을 건네주는 걸 깜박했다. 등굣길, 아이가 가방을 하도 빙빙 돌려서 학교 근처까진 내가 대신 실내화 가방을 들고 가는데 그걸 잊은 것이다. 아이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 내 손에 그대로 들려있는 실내화 가방을 보자마자 바로 학교 정문을 향해 뛰었다. 마침 핸드폰도 갖고 오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 정문을 통과할 때마다 아이 알리미로 '등교' 혹은 '하교'라고 문자가 오지만, 핸드폰이 없으니 아이가 정문 밖으로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정문 앞에 서 계신 교장 선생님을 향해 "아이가 실내화 가방을 안 가져가서요."라고 말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교장 선생님은 "안 그래도한 아이가 실내화 가방 안 가져왔다고 했는데..."라고 대답했다.

"저기 서 계신 선생님께 아이 반 이름을 가르쳐 주고 가방을 전해 달라고 하세요."

교장 선생님 말씀따라 젊은 남자 선생님을 향해 걷던 찰나, 같은 반 친구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선생님보다는 반 친구가 나을 것 같아 그 아이에게 실내화 가방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큰 일은 아니다. 실내화 가방을 못 챙기는 거야 흔한 일이고, 심지어 작년에는 아이가 책가방을 교실에 놔두고 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혹시나 반 친구가 아이를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생각도 들었다. 실내화가 없어서 교실도 못 들어가고 이리저리 배회할까 싶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애먼 친구들에게 온갖 짜증을 내는 거였다. 혹시라도 담임 선생님께 이상한 말을 할까 걱정도 됐다. 내가 직접 아이를 찾아 실내화 가방을 건네지 못한 것도 은근히 후회가 되었다. 반 친구가 내 아이를 놓칠까 봐 걱정되었다.


이렇게 예고치 못한 상황, 나는 불안하다. 아이도 불안할 것이다. 불안함을 불식시키기 위해 아이가 할만한 행동을 생각해 보았다.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하는 곳에 가만히 서 있거나, 아니면 신발 그대로 교실로 들어갔거나, 그 두 가지. 만약 실내화로 갈아신는 장소에 있다면 아마도 반 친구를 만났을 것이다. 교실에 들어가 있다면 더더욱 친구를 만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아이가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친구를 놓치는 경우다. 만약 그렇다면,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늦게라도 교실로 들어갈 수 있을까?


지난 겨울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한 달 살기를 하던 마지막 날, 공항 근처 쇼핑몰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 얼리 체크인을 하고 시간이 남아 쇼핑몰을 돌아다닌 게 시작이었다. 아이보다 두 살 많은 조카와 함께였고 새언니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4층에 있는 정원으로 가려던 길이었다. 마침 3층에서 4층으로 가는 에스칼레이터 앞, 음료 자판기에 잠시 지체하는 사이, 아이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4층을 뒤지고 3층을 뒤지고 2층을 뒤졌다. 새언니도 2층을 뒤지고 3층을 뒤지고 4층을 뒤졌다.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무엇보다 규모가 큰 쇼핑몰이라, 나는 허겁지겁 1층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8살 정도 한국에서 온 남자아이가 있으면, 바로 연락을 해달라고 안내 직원에게 부탁한 뒤 내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이를 찾으러 아이를 잃어버렸던 3층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분을 돌아다니다 아이를 찾았다는 새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애타게 아이 이름을 부르며 돌아다니던 새언니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인포메이션 센터로 안내를 받았고, 마침 그곳에 아이가 있었다고 했다.


안내 직원이 아이를 보자마자 내게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지금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아이를 찾았다. 아이를 잃어버렸던 시간은 아마도 15분 남짓이겠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인생의 마침표를 생각할 만큼 절박했다. 그런데도 나는 큰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아이를 찾았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다닌 새언니와는 대조적인 행동이었다.


오래전 일을 나는 지금에서야 남긴다. 실내화 가방 안 가져간 게 뭐라고, 마음 조리며 기도문을 읊조리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쓴다. 아이는 아마 실내화 없이, 교실로 바로 들어갔을 것이다. 지난겨울, 4층 정원을 가기 위해 엄마와 외숙모와 사촌형이 3층 에스칼레이터에서 내려 자판기를 향해 나아갔을 때에도, 주변을 볼 새 없이 그저 4층 정원에 가겠다는 생각에 바로 직진했던 것 것처럼. 실제로 아이는 4층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울면서 주변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엄마를 잃어버렸냐고 묻는 친절한 누군가를 만나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게 된 것이다.  


생각 외로 아이는 이 일로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충격 받은 건 나였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고, 조호바루 한 달 살기에 대한 기억도 즐거웠던 일로 남아있다. 이번 일도 그럴 것이다. 아이는 현관 앞이든, 교실 안이든 친구를 통해 실내화 가방을 받을 것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수업을 들을 것이다. 학교에 갔으면 실내화가 있든 없든 교실로 가야 하고, 교실에서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그 직진 본능을 나는 믿는다. 4층 정원을 향해 홀로 직진했던 그날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교실 앞에서 서성거리던 아이는 반 친구를 만나 실내화 가방을 받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증의 안전벨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