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의 여름(2023.06-2023.08)
아이와 자주 실랑이를 벌인다.
등교 준비로 아이를 재촉할 때가 가장 빈번하고 요즘에는 차량을 타며 이동하는 중에도 종종 발생한다. 원인은 안전벨트. 안전벨트를 매는 게 그토록 힘든 일인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에는 카시트에 앉아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섯 시간 이상 잘만 다니더니, 요즘은 20여 분 정도 걸리는 길에도 안전벨트를 하지 않으려 한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말에 아이는 맸다고 말하지만, 신호 대기 중 뒤를 쳐다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왕왕 있다. "안전벨트 매야지."라는 말에 "응, 알았어."라고 아이가 대답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이가 벨트를 매지 않는다. 신호대기 틈에 뒤돌아 확인을 한다.
"어서, 안전벨트 매."
"응, 알았어."라고 대답은 잘한다.
이렇게 서너 번 반복하다 보면 나도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간식을 사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차를 탈 때는 안전벨트를 매야지. 그건 약속이야.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엄마도 간식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야."
아이가 매달린다.
"지금 안전벨트 맸어."
며칠 전에도 안전벨트를 두고 실랑이가 붙었다. 출발한 지 십여분,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도 마치 벨트를 맨 것처럼 손으로 잡고 있던 아이를 향해 "오늘 간식은 없어."라고 말했다. 센터나 학원이 끝난 뒤, 근처 빵집이나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주곤 하는데, 그건 아이에게 일종의 루틴이었다. 보통은 그렇게 말하다 안전벨트를 꼭 매겠다는 다짐을 받고 간식은 사주는 것으로 일단락하곤 했지만, 이날만은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늘 간식은 없어. 그건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야.”
아이가 있는 힘껏 보채다가 끝에는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푸념이라기보다는 마치 자학 같은.
"예전에 내가 성당에서 퀴즈를 못 맞춰서 사탕을 못 받았잖아. 그때 기억이 나서 너무 힘들어. 내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그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게."
"그건 아주 오래전 일이잖아."
"그래도 그 기억이 나. 엄마, 나를 죽여줘."
나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나는 너를 죽일 수 없어. 생명은 소중해서 그러면 안돼."
"그럼 경찰아저씨한테 죽여달라고 해야겠다."
"그것도 불가능해. 그럼 경찰아저씨가 벌 받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정말 죽고 싶으면, 차라리 빨리 죽게 해달라고 기도해."
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을 달려와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내 마음속 서늘한 바람이 들었다. 나는 그 기분을 부여잡고 싶지 않았다. 대신 과자 한 봉지를 뜯었다.
학원을 끝내고 이 모든 걸 잊은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손전등으로 장난을 쳤다. 집안의 불을 모두 끈 채, 손전등을 천장에 비추니 동그란 모양의 노란빛이 생겼다. 아이는 그걸 신이라고 말하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제발 오래 살게 해 주세요."
불과 두어 시간 만에 아이는 '제발 죽게 해 주세요'에서 '오래 살게 해 주세요'로 완전히 노선을 변경했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야 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른다. 아이가 극단을 오간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양 극단에서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