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의 여름(2023.06-2023.08)
뜸을 들이다. 어렸을 적 자주 듣던 말이었다.
"나중엔 집에 가기 싫다고 조를 거면서, 만나자마자 바로 놀면 얼마나 좋니. 무슨 애가 그리도 뜸을 들이니?"
주로 외갓집에서 엄마가 하던 말이었다. 동갑내기 사촌과 한 살 터울 사촌동생이 있어 방학 때마다 방문하곤 했다. 여자 형제가 없어 혼자서 조용히 놀던 우리 집과는 달리 자매의 끝없는 수다로 가득 찬 외갓집은 내게 신세계였다. 동갑내기 사촌과는 마음도 잘 맞아, 생전 가보지 않던 만화방도 갔고 비디오도 빌려 봤다. 나는 외갓집을 좋아했다. 즐거웠다.
그런데 늘 처음 한두 시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 옆에 꼭 붙어 앉아 있곤 했다. 외숙모가 건네는 말 몇 마디에 겨우 대답을 할 뿐이었다. 자매가 나를 모른 척한 것은 아니었다. 내게 말도 걸고, 같이 놀자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쭈뼛거렸다. 왜 그랬던 걸까?
등굣길 "친구들은 어디 있어?"라고 아이가 물었다. 마침 저 앞에 친구들이 모여 있었고, 나는 빨리 뛰어가자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는 친구들 옆에 도착했으면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왜... 친구들 찾았잖아."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같이 갈 게 아니면서 친구들은 무슨 이유로 찾았니?"
"부끄러워서."
친구들에게 다가가기 부끄럽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다. 언제가 아이에게 물었을 때도 비슷한 대답이 나왔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굣길 모습은 조금 달랐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말도 제법 걸고, "같이 놀 수 있어?"라고 묻기도 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문득 "너는 왜 그렇게 뜸을 들이니?"라고 말하던 친정 엄마가 생각났다. 뜸을 들이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네가 뜸을 들이는 거였구나. 그래서 아침에는 유독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못했구나.’
어쩌면 내가 생각한 이유가 진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기쁘다.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하다.
아이를 바라보며 나 자신을 찾아간다. 탈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고민 많은, 마음 약한 아이였다. 아빠는 너무 바빠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피곤에 지친 아빠는 대체로 무관심했지만 때때로 짜증을 냈다. 이유는 한 가지. 당신이 찾는 물건이 제자리에 없을 때. 나는 아빠에게 혼날까, 가위나 스카치테이프 등을 제 자리에 놓았다. 또 하나, 현관에 신발이 엉켜 있는 것도 문제였다. 나는 아빠가 오기 전, 현관에 아무렇게나 놓인 신발을 짝 맞춰 조용히 정리했다.
엄마는 다른 의미에서 바빴다. 시댁 어른을 쉰이 넘을 때까지 모시던 엄마는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큰 소리가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용한 바다 같은 사람. 나는 엄마의 따뜻한 보호 속에서 살았지만, 엄마는 때때로 유별난 내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나는 욕심 많고 지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엄마는 자주, 내가 유별나다고 얘기했다. 도대체 어떤 면에서 유별났는지는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에 대한 서운한 기억도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몇 가지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3학년 즈음 플루트를 배우고 싶다는 내 말을 엄마가 단칼에 거절한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친구가 갖고 있다는, 고가의 문제집을 사달라고 했을 때도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집에 이렇게 문제집이 많은데, 유난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중학교 때 즈음, 고모를 향해 버릇없는 말을 했을 때 엄마가 나를 조용히 불러내 따끔하게 얘기했던 일은 그나마 또렷하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너 오늘 유난스럽게 왜 그러니?"
이 외에 기억나는 사건은 없다. 나는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칭찬을 받기 위해 애쓰던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 진짜 모습을 잘 모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내 진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아이를 바라보면 그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내 맨 얼굴이 보인다. 나는 지기 싫어한다. 나는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상처받는다. 나는 감정기복도 심하고, 어떤 면에서는 눈치도 별로 없다. 엄마들 무리에서 신나게 떠들다가, 집에 와서 그 말을 왜 했나, 후회한 적도 많다. 지금까지는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온 시간 덕분에, 어떤 말을 해야 하고 하면 안 되는지 깨달았지만, 가끔 나는 직설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찾아간다. 더 이상 내게 유난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말을 듣더라도 나는 상처받지 않는다. 많이 단단해졌다. 나는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서 자유를 느낀다. 해방된 것 같다. 살아있는 것 같다. 내 아이의 뜸 들임도 지켜봐 줘야지. 왜 그러냐고 말하지 말고,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 줘야지.
네 마음이 가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