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의 겨울(2023.12-2024.02)
아이가 학교에서 걱정 인형을 만들어 왔다.
양말에 솜을 넣고 1/3 지점을 묶어서 머리처럼 보이도록 한 인형이었다. 머리 부분에 눈과 코도 그려 넣고 모자도 만들어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아이는 내게 이걸 보여주며 "걱정 인형"이라고 소개했다.
"엄마, 이 인형한테 걱정을 말하면 걱정을 없애도록 도와준대. 인형이 걱정을 잡아먹는대."
그날 아이는 잠을 잘 때에도 걱정 인형을 머리맡에 두었다.
"너는 걱정이 뭔데? 걱정 인형한테 한번 말해봐."
걱정 인형을 손에 쥔 채 아이가 말했다.
"내가 컸을 때 이 지구가 뜨겁지 않게 도와줘."
얼마 전 친구의 생일 파티, 한 친구와 실랑이가 있었다. 이유는 친구가 동물 장난감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말했다.
“너 왜 자꾸 동물 장난감을 때리는 거야? 장난감이 아프잖아.“
“장난감에는 감정이 없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동물 장난감을 함부로 대하는 친구를 두고 아이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만으로 여덟 살, 이제 곧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이. 장난감에 대한 감정 이입이 당황스러웠지만, 그것이 아이만의 감성이라고 생각했다.
친한 친구가 집에 놀러 온 언젠가, 한 시간 정도 자기방에서 놀다가 친구가 집에 간 뒤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젠 내 방에 들어가기 싫어.”
“왜?“
“내 방에 가면 집으로 간 그 친구가 떠올라서 슬퍼.“
나는 종종 아이에게 섬세한 감성을 느낀다. 그 감성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싶다. 이러면서도 아이는 험한 말을 내뱉고 나를 아프게 한다.
“엄마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걔를 죽여 없애버릴 거야. 단두대로 처형할 거야.”
너는 보드라운 눈처럼 하얗다가 순식간에 질척거리는 구정물로 변한다. 이 또한 너겠지.
작은 자국에도 소스라치는 너이기에
그 반응 또한 요란한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