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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Feb 02. 2024

길고 긴 여행

아홉 살 아이의 겨울(2023.12-2024.02)



여행을 갔다.


3주간 일정으로 친정 엄마와 새언니, 아이보다 두 살 많은 조카와 함께였다.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다. “어쩌라고 짜증 나네.” 아이의 말끝마다 짜증이 붙었다. 사촌형과 일일이 비교하며 소리를 높였다. “왜 형만 좋은 거 해? 왜 형만 자꾸 이기는 건데? 왜 형만 칭찬해?” 아이는 계속 신경질을 냈고 나는 자주 폭주했다.


결국 사람들이 와글와글한 야시장, 참다못한 내가 소리쳤다.

“엄마가 너처럼 똑같이 해볼까? 여기서 망신 한번 당해볼래? 엄마가 못할 것 같아?“

기어이 내 말은 듣지 않고 사사건건 짜증 내며 대꾸하는 아이를 향해 화를 내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너와 함께 여행하지 않을 거야. 너와 있으면 불편해. 엄마가 너무 힘들어.”


친정 엄마 앞에서 이토록 심하게 아이를 혼낸 건 처음이었다. 아이는 주말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갔지만 서너 시간 만으로 아이의 평소 모습을 알기는 힘들었다. 가끔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며 울기도 했지만 예민한 아이 그 이상은 아니었다.

“쟤가 도대체 왜 저러는 거니? 네가 잘 가르쳐야지. 혼낼 때는 좀 엄하게 하고.”

친정 엄마를 향해 나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어. 계속 이러면 약물 치료를 할 거야. 이젠 지쳤어.“


이후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상담사로 일하는 새언니가 나 대신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때때로 아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던 사람이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경계에 있는 아이라서 그래요. 아주 경미하긴 하지만 약물이 도움이 되기도 해요.“

이날 야시장 투어는 악몽 같은 밤, 한밤중 잠 못 이루던 나는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다. 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껏 친정 엄마에게 아이의 진단을 말한 적 없었다. 두 돌을 몇 개월 앞두고 집 근처 정신과 의원에게 아이가 전반적 발달장애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 것이 전부였다. 그때 엄마가 했던 한 마디. “고작 몇 분 아이를 본 의사가 뭘 안다고 그러니?”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6년이 지나 엄마는 새언니를 통해 “자폐 스펙트럼”이란 진단명을 다시 들었다. 엄마는 예전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폐인 듯 아닌 듯한 경계,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며칠 뒤 엄마가 내게 말했다.

“정말 심한 경우도 있는데 넌 아무것도 아니야. 딴생각 말고 애 잘 키울 생각 해.“


이 바람의 끝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생각보다 잠잠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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