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여덟 살 아이의 여름(2024.06-2024.08)
책을 집어던졌다.
플라스틱 박스 안에 블록을 내팽개친 뒤, 손에 생채기가 날 만큼 거칠게 부서 버렸다. 분해한 블록이 떨어질 때마다 플라스틱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이가 한 일이 아니라 몇 시간 전 내가 한 일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었다.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친구와 놀다 소리를 질렀다.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친구가 아이를 놀렸고 아이는 그것에 몇 십배로 화답했다.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욕도 했다. 손 제스처는 처음 보았다. 나만 본 게 아니고 친구의 엄마도 함께였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를 나왔다. 이와 비슷한 일이 바로 며칠 전에도 있었다. 동일한 아이였고 역시 엄마가 함께 있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엄마였다. 그 사실이 더 불편했다.
"엄마, OO이가 나한테 손가락으로 욕하며 놀렸어."
친구가 엄마에게 말했다. 그날도 곧바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이후 아이에게 물었더니 손가락 욕은 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다시 이런 일이 생겼다. 친구들과 놀다 아이가 고함을 지르는 일이야 종종 있는 일이고, 다만 아이가 손가락 욕을 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기분이 엉망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욕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9 곱하기 2는 뭐야?"
"18"
"욕하면 안 되지."
뭐, 이런 식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욕을 알아가는 과정이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보다 한 두 살 많은 초등학생들이 거리에서 장난스레 욕을 하는 걸 보곤 했으니까. 중학교야 뭐 말할 것도 없고. 다만 이런 말을 진짜로 기분 나쁠 때 쓰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는 보지 못했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런데 그걸 내 아이가 했다.
머리꼭지가 돌았다는 표현이 아마 적당할 것이다.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뒤, 나 또한 온갖 말을 내뱉었다. 이걸 순순히 들을 아이는 아니었다. 아이는 몇 번 더 소리를 질렀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듣기 싫었던 나는 밖으로 나가려 하고, 아이가 그걸 막아 세우는 상황이 반복됐다. "엄마는 나가서 안 들어올 거야. 너 혼자 마음대로 해."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못 가도록 막지. 그러면서도 자근자근 정제되지 않은 말로 아이를 짓밟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러 권의 양육 서적을 읽었지만 책에서 나온 내용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나는 조금도 참지 않았다.
"너만 없으면 돼. 너만 사라지면 다른 친구들은 즐겁게 놀 거야. 이제부터 친구들과 놀지 마. 그런 나쁜 행동을 하며 친구들과 싸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게 나아. 앞으로 절대 친구들과 놀지 마." 아이의 반응은 기록하고 싶지 않다. 험한 말이 오갔고 언제나 그렇듯 결론은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그렇다면 나를 낳지 말지 그랬어. 엄마, 나를 죽여줘."
나는 도대체 뭐에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상대 아이의 엄마가 나와 아는 사이라서? 며칠 전 생긴 일이 오늘 또 일어나서? 그것도 아니면 아이가 손가락으로 욕을 해서? 모두 다 가능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아이의 감정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친구에게 소리를 질렀고 손가락으로 욕을 했는데도, 나에 대한 미안한 기미 없이 되려 자신의 화를 표출했기 때문이다. 그 화가 나를 바닥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도대체 언제까지 쓰나미처럼 쏟아져 오는 아이의 감정을 감당해야 하나,라는 절망 때문이다. 도무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언제까지 너를 견딜 수 있을까.
다시 고쳐 쓴다. 내가 언제까지 너를 통제할 수 있을까. 통제라는 단어를 쓴 것은, 오늘 아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일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것 금지. 숙제를 다 한 뒤 유튜브 보는 것 금지. 몇 달 전부터 하루 10분이나 20분,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못한다고 말했다.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은 애초에 없었고, 가끔 하굣길 친구의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는 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요즘 아이들이 즐기는 모든 것을 오늘 금지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옳은 방법일까? 언제까지 금지를 해야 하나?
이것도 아니다. 나는 핵심을 비껴갔다. 금지가 능사가 아니다. 아이가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P.S
행동치료 관련 책에서 아이가 문제 행동을 지속할 경우, 문제 행동이 나오는 상황을 사전에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유독 한 친구와 연달아 부딪히니 그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지 않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여의치 않다면 그 친구와 있었을 때, 내가 옆에서 아이의 행동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아이의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개입할 수 있게. 그것도 안되면 문제 행동이 나오기 전 그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