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류승연
영화 “그녀에게”의 원작자인 류승연 작가의 신작. 중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의 성인기 삶이 고립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쏟아낸, 절절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발달장애인 이전에 사람으로 봐야 한다." 작가가 반복해서 강조했던 문장이다. 우리는 장애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실상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로 간주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 모두 나이 들고 병들어 가는데도, 인지능력의 저하로 합리적인 선택을 못할 수 있는데도, 무릎관절 약화로 혼자 힘으로 걷지 못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단단한 벽을 쌓는다.
그동안 발달장애인은 단지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갖는 당연한 마음까지도 부정당하거나 외면당하곤 했다. 그것이 내가 마주한 ‘진짜’ 현실이었다. 다르지 않다, 아니 똑같다. 아들과 나는 똑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P132
자폐 진단을 받은 아이를 키우며 공교육에서 소외됐다고 느낀 순간이 많았다. 특수교육지원 대상자도 아니고, 아이가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전무한 상황에서 나는 아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뿌리 깊은 편견도 한몫 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중증 발달장애 아동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작가의 아들은, 경증 발달장애를 중심으로 한 특수교육의 한계 때문에 제대로 된 맞춤형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교사 한 명당 학생 여섯 명. 이들은 제각각 기능이 달라 개별화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한국경진학교의 심승현 교사와 같은 특수교사도 존재한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특수교육은 특정 교사의 눈물겨운 노력이 아니라, 제도적 개선을 통해 구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특수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특수교육만이 문제가 아니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의 삶도 고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성인기가 된 장애인의 삶은 크게 네 가지, 가족과 함께 살거나 시설에 들어가거나 정신병동에 장기 입원하거나 노숙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인 발달장애인 대부분이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가족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그때까지 가족과 함께 살던 사람이 갑자기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작가는 아들보다 하루라도 오래 살기를 바라는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이 장애인 지원주택. 서울시 지원주택 사업은 2024년 기준 245호로 적은 수긴 하지만, 주거코치와 주거코디가 지원센터에 상주하는 데다 사회복지사들의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어 중증 발달장애인들의 자립 가능성을 열어준다. 물론 이곳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할 것이다. 작가의 말 따라 중증 발달장애인의 삶이 ‘뉴스-사건/사고-안타까운 소식-한강’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 외에 성인 발달장애인이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시설 입소라는 말, 그래서 특수학교가 시설 입소에 적합한 사람을 만드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 이 책은 그래서 더 값지다. 성인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마주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몰랐다. 아들이 성장한다는 건 단순히 키가 커진다는 게 아니라 아들이 사는 세상이 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 세상은 아들이 어린이일 때 속했던 세상보다 훨씬 차갑고 냉정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안다. 그 세상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선 학령기를 그냥 어물쩍 넘겨선 안 된다는 것을. 학교에서의 인지 학습과 치료실에서의 기능 발달만이 아들에게 필요한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당연해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던 사회적인 부분이 아들 미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존 키트라는 것을. 하지만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우리 사회에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라는 것을. P10
발달장애인이 사는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