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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을 팝니다

written by 제임스 데이비스

by 하이리


우리가 정신질환이라 부르는 것은
여러 고민과 고통을 마주할 때 나타나는
가장 인간적인 반응일 수 있다.



직전에 읽은 “정상은 없다”과 연관도가 높은 책. “정상은 없다”에서 ‘전쟁’ 부분을 뺀, 자본주의와 고통의 의료화가 주된 내용이다. 다른 점이라면 약물 치료에 대한 작가의 입장이다. 작가는 약물 치료의 효과가 거대 제약 회사에 의해 과대 평가되었다고 주장한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를 쓴 작가이자 의사는 내과의 경우 처방을 내리기 전 엄정한 임상실험으로 효과와 부작용이 입증된 약물을 쓰는데 반해, 정신건강의학에 쓰이는 약제의 경우 그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책은 약물이 정신 질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로 채워져 있다. 장기간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라면 특히.


우리는 유해한 사회적, 정치적 환경과 노동 환경을 비난하는 대신 잘못된 뇌와 정신을 탓한다. 우리는 장기적으로는 수백만 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수익성 높은 약물 처방을 옹호한다. 거대 제약 기업에는 좋은 소식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P8


조현병, 양극성 장애, 주요 우울증과 같은 장애는 오랜 시간 따라다니는 질환이고 거의 평생에 걸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통념이지만, 1950년대 이래로 수행된 연구는 정신과 약물을 계속 복용한 사람들이 약물을 중단한 사람들에 비해 장기적으로 나쁜 경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연구와는 사뭇 다른 약물치료에 대한 평가가 제약 회사의 성공적인 마케팅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효율성을 주요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사회 구조가 상당 부분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우울증을 호소하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엄밀히 말해 ‘건강 회복’이 아니라 ‘일터 복귀’다.


“자본주의는 당신의 내적 삶이 완전히 고쳐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당신이 기능적인 우울증 환자나 기능적인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에 만족합니다. 두 경우 모두에서 당신은 여전히 기능적인 소비자이고 중요한 건 그것뿐이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속적인 “기능적 불만족”의 상태야말로 후기 자본주의가 선호하는 감정 상태이다. 일을 계속할 만큼은 기능적이되 소비를 지속할 만큼은 불만족스러워하고 있는 상태 말이다. P218


여기에 또 하나의 사회적 원인을 찾자면 바로 초개인주의다. 초개인주의는 정신 질환을 사회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정신 질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개인이 문제로 바라본다. 사회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말을 던지고, 이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나약하다고 판단한다. 정신 질환을 겪는 사람들은 어찌 됐든 빠른 회복을 위해 약물을 복용한다.


나는 현재의 보건 의료 서비스를 지배하고 있는 고통의 철학은,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을 선호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성향과 발맞추어 간다고 답했다. 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고통을 이해하고, 관리하고, 이에 반응하는 방식에 이와 같은 초개인주의가 영향을 미친다고도 답했다. P278


아쉬운 것은 작가가 항우울제 일종인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만을 다뤘다는 점이다. ADHD에 주로 처방하는 메틸페니데이트와 아토목세틴 계열에 대한 연구가 궁금했지만, 이에 대한 결과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항정신병제에 대한 연구 결과를 참조하자면, 세계보건기구(WHO)가 진행한 비교 연구에서 조현병의 장기적 경과를 보았을 때, 가장 좋은 증상 및 기능상의 경과를 보이는 환자의 90%가 항정신병제를 복용하는 선진국이 아니라, 평균적으로 15%의 환자들만이 항정신병제를 복용하는 나라인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적으로 약물 치료에 보수적인 입장이지만 약물 치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약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다면 약물 치료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 건강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약물 치료로 향하는 과정은 지양해야 한다. 다만 현실을 고려할 때, 일개의 환자로서 약물 치료를 권하는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 질환이 사회 구조적 이유로 확산되고 있고, 정신 질환이 약물 치료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다 함께 연대하여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은 개인 성향상 하지 못하겠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를 보호하는 것. 나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정서적 안정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반드시 필요하다면 약물을 사용하되 단기적 목적으로 복용해야 한다는 것뿐. 하나 덧붙이자면 정신 질환은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적 환경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이것이 적어도 정신 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감소시키리라 믿는다.


책에는 2016년 노르웨이의 ‘투약 없는 치료’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다. 강요된 약물치료 없이 전인적이고 관계적인 방식으로 환자를 돕겠다는 노르웨이 보건부의 혁신적인 시도다. 최근 기사를 찾아보니, 실제로 이 원칙을 지키는 트롬쇠의 6개 병상 "약물 없는" 병동이 존재했다. 이곳의 환자들은 복용량을 줄이거나 약물을 완전히 끊었을 때 몇 가지 혜택을 보았다고 한다. 초기에는 약물 없는 병동에서 지내는 게 어려워 급성 병동으로 옮겨야 했던 환자가 두세 명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 기사는, 노르웨이 새 정부의 공공 자금에 대한 정책의 변화로 약물 없는 병동 운영이 확실하지 않다고 마무리 짓는다. 그럼에도 이 같은 시도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약물 없이도 정신 질환은 치료할 수 있다. 치료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다면 정신 질환에 따른 여러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그 외 정신 장애에 대한 작가의 입장과 조기 개입에 대한 인상적인 구절.

인간관계 문제, 성적 문제, 직장에서의 불만족, 낮은 자존감, 좌절된 야망, 사별, 외로움, 무상감과 권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수많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람들 대부분이 약물을 처방받았고, 의학적 용어로 그들의 고통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진단명을 받았다. 그 진단명은 대개는 우울증, 불안 장애였지만, 때로는 양극성 장애, 성격 장애 혹은 정신증이라는 진단명을 받는 일도 있다. (중략) 정상적이지만 고통스러운 그들의 경험은 짧은 진찰을 받은 뒤엔 대다수의 경우 특정한 정신 장애의 증상으로 다시 명명되어, 명명된 장애에 맞는 정신과 약물을 처방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P264
학습 장애와 사회성 문제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사회적 도움과 교육적 도움을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신 건강 문제에 관해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찌 되었건 이 분야에서 조기 개입이란 흔히 정신과 약물을 처방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략) 조기 개입 프로그램이 생의학적 도움을 심리사회적 도움보다 우선시하게 되면, 더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효과와 안전성이 확실하지 않은 약물 치료가 시행되는 결과만을 낳게 될 수도 있다. P161


가장 기억에 남은, UN특별 조사 위원이었던 푸라스의 말.

흔히들 하는 실수가 무엇인지 아실 겁니다. 진단을 받으면, 진단을 받은 뒤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이 진단이라는 프레임에서 해석되는 거죠. 그리고 나면 생의학적인 차원에서 결정이 내려지고, 생의학적인 치료를 받게 될 일만 남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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