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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은 없다

written by 로이 리처드 그린커

by 하이리



제목을 다시 쓰면 이렇다.
정신 질환과 낙인의 역사.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자본주의, 전쟁, 정신 질환의 의료화. 생산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는 생산에 어려움이 있는 정신 질환자들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 정신 질환에 대한 낙인은 참전 병사들에 대한 필요로 약화되었다가 전쟁 이후 다시 강화되는 경향을 띄었지만, 전쟁은 군인이 겪는 여러 정신적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며 정신 의학의 발전을 도왔다. 그리고 지금은 일상적이고 비의료적인 고통을 의료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마저 의료적 범주 내에서 취급하는 것이다.


정신 질환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사람에 대한 정의에서 나온다. 낙인은 특히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개인의 책임에 대한 이데올로기 그리고 전쟁과 인종주의, 식민주의의 복잡한 유산처럼 뿌리 깊은 구조적 조건의 결과로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P21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요점만 정리하면, 정신 질환의 원인을 개인에 두는가 혹은 환경에 두는가에 따라 낙인의 방향이 달라진다. 가령 PTSD는 개인의 성격보다는 환경적 스트레스를 주요 원인으로 보기 때문에 낙인 효과가 덜하다. 반면 개인의 자제력과 적응력을 주된 원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PTSD는 여전히 낙인의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같은 트라우마를 경험하고도 PTSD를 겪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원인을 개인 고유의 문제로 돌린다. 결국 낙인은 나 자신 때문인가 아니면 나를 둘러싼 환경 때문인가, 문제의 원인을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차이로 달라진다.


작가는 최근의 흐름인, 정신 질환을 생물학적, 유전적 원인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낙인을 감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신 질환을 생물학적, 유전적으로 설명하는 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사 생물학적, 유전적 원인을 찾는다 하더라도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떠나 정신 질환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 질환을 스펙트럼으로 보는 경향이 낙인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명확한 구분은 불가능하며, 정신 질환이 언제나 ‘비정상’이나 '장애'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 장애의 책임이 개인이 아닌 환경에 있다고 보는 '신경다양성' 운동은 환경을 개인에 맞추어 개선한다면, 기존에 장애라 여기던 것이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낙인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으며, 어느 사회나 비하와 소외의 대상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낙인을 거부하고 고발하고 약화하고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낙인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과정이며 우리는 그 과정을 바꿀 수 있다. P475


정신 질환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혹은 환경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개인이든 환경이든 아니면 그 외 여러 조건이 얽히고설켜 나타나는 게 정신 질환이다. 정신 질환의 의료화는 ADHD나 자폐 스펙트럼, PTSD처럼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신 질환을 등장시켰으며, 우울 장애, 양극성 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등 정신 질환을 세부화했다. 현재 정신 질환은 우리 생각보다 흔하고 평범해졌다. 우리 누구든 정신 질환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부디, 나 자신과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낙인을 삼가길.


해마다 미국 성인 중 2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6000만 명 이상이 정신 질환의 기준에 부합한다. 이들의 질환은 대부분 가볍고 단기적이며 제한적이다. 그러나 심각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거식증의 사망률이 어떤 면에서는 10퍼센트 가까이 된다. 정신 질환과 거의 항상 연관된 자살은 미국 10대의 세 번째 사망 원인이고, 사망자의 대부분은 정신건강 관리를 받아 보지 못했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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