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데번 프라이스
신경다양성을 다룬 책 중
가장 진보적인 관점을 담은 책
작가는 자폐인이자 심리학자이자 트랜스젠더다. 작가를 포함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자폐인이자 성소수자다. 자폐인은 비자폐인과 비교해 동성애적 감정을 갖거나 성별 불일치를 느낄 경향이 높다는 연구 결과는 알고 있었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이 책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자폐와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한데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하는 자폐의 이미지는 젠더에 순응적인, 부유한 백인 남성이 기준이다. 젠더에 순응적이라는 말은 성소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부유하다는 말은 진단을 받을 만큼 경제력을 가졌다는 의미다.
여성이나 유색인종(흑인이나 라틴계), 성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폐 증상이 있더라도 진단을 받을 확률이 떨어진다. 실제로 자폐로 진단받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4배로 많다. 여성 자폐의 경우 남성 자폐보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인간관계 기술이 발달한다. 흑인의 경우에도 순종적이고 순응적인 것을 요구받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자폐와는 다른 경계성 인격장애나 적대적 반항 장애, 양극성 장애와 같은 오진을 경험하기도 한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거나 발현하지 못한 채 가면을 쓰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과정, 끝내 번아웃에 이를 만큼.
어디까지 자폐로 봐야 하는가? 책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은 질문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진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사회적 인간관계 기술이 발달했거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순응적인 특성을 강화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면을 쓰는 데 성공했거나, 그 외 여러 이유로 자폐란 진단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과연 자폐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구분이 과연 필요할까? 심지어 작가는 정신과 의사가 공식 진단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무증상 자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폐의 이미지는 고정관념에 불과하며, 이에 해당하지 않는 자폐는 무지갯빛만큼 다양하다.
작가의 논리를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폐증이 있고, 그래서 존중받고 받아들여질 자격을 더 확대해야 한다. 자폐인은 자폐인으로서 정체성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지금껏 쓰던 가면은 과감히 던져 버려라.
자폐라는 개념의 확대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마스킹에 대해서만큼은 중립적인 입장이다. 필요에 따라 가면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마스킹이 번아웃에 이를 만큼 지속적이지 않길 바란다. 가면을 써야 하는 자폐인의 고통을 간과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면을 쓰고 벗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 되지 않을까? 사회에서 지켜야 할 예의, 매너도 넓은 의미에서는 가면에 해당한다. 가면 없는 세상은, 홀로 살지 않는 이상 상상하기 힘들다. 작가는 가면을 벗는 과정에서 자폐인 커뮤니티를 통해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고 조언하는데, 가면을 벗지 못하는 자폐인들에게도 커뮤니티는 도움이 된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가면을 쓰거나 벗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이들이 행복하길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것은 이 책이 대부분 고기능 자폐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사회적 관계에서 고통을 겪지만, 이들 대부분 자립이 가능한 상태다. 이 세상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는 자폐인도 많다. 작가는 이를 상투적 자폐증이라 표현한다. 자폐를 고기능과 저기능으로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고기능 자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여성이라면 특히. 그 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싶다. 아직 나는 자폐에 대해 이 정도로 진보적인 시각을 갖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