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미운 아기오리>
가만히 있어도 닭똥 같은 땀이 흐르는 여름이었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이 씨네 농장, 작은 연못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며칠 전, 열한 마리 새끼를 낳은 오리네였다.
“쟤랑 놀지 않을 거야. 맨날 내가 헤엄치는 거 방해만 해.”
“물장구도 못 치면서 왜 화만 내는 건데?”
모두 막둥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냥 말썽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최강 천덕꾸러기 막둥이가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 마… 어마… 꽤-액! 꽥꽥꽥꽥!”
막둥이의 울음에 오리 형제들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지만 어미 오리는 막둥이의 어눌한 발음에만 온 신경이 쓰였다. '말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왜 울기만 하는 걸까?’하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사실 막둥이는 날 때부터 달랐다.
알도 유난히 작은 데다 다른 알보다 꼬박 하루 늦게 태어났다. 혹여나 잘못될까 살뜰히 알을 품었지만 어미 오리의 불안은 그대로였다. 형제들이 하나 둘 깨어났을 때도 묵묵히 있는 작은 알을 보며 ‘조금 더 늦게 나와 건강하기만 해라’는 마음이 컸다. 알을 깨고 나온 뒤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막둥이는 좀 이상했다.
막둥이는 생김새부터 유별났다. 다른 형제들은 사랑스러운 노-란 털을 뽐냈지만, 막둥이는 마치 먼지를 뒤집어쓴 듯 짙은 잿빛 털을 갖고 있었다. 얼굴 부분은 아예 새까매서 정체를 알기 힘들었다.
하는 짓은 더 눈에 띄었다. 막둥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말도 못 하는 데다 소리만 질렀고 헤엄도 즐기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막둥이가 있는 힘껏 물장구를 쳐도 형제들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갖은 노력에도 점점 멀어지는 거리에 늘 심통이 났다.
‘왜, 나만 잘 안 되는 거야?'
막둥이는 남은 힘을 모조리 쏟아붓듯 움직였다. 거센 물장구에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졸지에 물벼락 맞은 오리가 얘기했다.
“너는 얼굴도 못생긴 게 헤엄도 요란하게 치는구나. 따라오지도 못할 거면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막둥이는 잠시 헤엄을 멈추고 물 위에 동동 떠 있었다. 자꾸 화가 나고 짜증이 밀려왔다. ‘아무리 해도 안 돼'와 같은 조바심에 막둥이 입 밖으로 나온 건 “꽥꽥꽥꽥” 앙칼진 소리뿐이었다. 저 멀리 앞서가던 어미 오리가 뒤쳐진 막둥이를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게으름 피우면 안 되는 거야. 끝까지 노력해야지.”
“어마... 나, 여...씨...미... 꽥꽥꽥꽥”
생각과 달리 좀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마…” 라고 말하는 데에도 힘이 필요했다. 더 많은 말들이 가슴속에 가득했지만 할 수 없었다. 대신 막둥이의 입에서는 “꽥꽥꽥꽥”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막둥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어미 오리는 막둥이의 울음을 알아듣는 요령이 생겼다.
“꽥꽥꽥꽥!” 쉼 없이 내지르는 건 대단히 화가 났다는 말이고, “꽤-액” 늘어지는 울음은 뭔가 불편하거나 슬프다는 소리다. 아주 짧지만 강력한 ‘꽥!’은 도와달라는 의미였다.
세상은 어미 오리 같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오리 형제들부터 막둥이를 따돌렸다. 막둥이는 몸짓도 작아서 자기 몫의 먹이도 뺏기기 일쑤였다. 게다가 입맛도 까다로웠다. 농장 주인 이 씨가 주는 사료는 너무 딱딱해 도저히 씹을 수 없었다. 다른 오리 형제들이 모이통 앞에서 우걱우걱 사료를 씹고 있을 때, 막둥이는 마당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곤 했다.
병아리들을 돌보던 암탁이 막둥이를 보자마자 날카로운 부리를 세우며 내쫓기 시작했다.
“오리 녀석! 여기 얼씬도 하지 마."
갓 태어난 병아리들도 어미 닭을 거들었다.
“저리 가. 저리 가! 삐약삐약”
수탉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에구, 웬 놈의 오리가 저리 못나 가지고..."
어느덧 가을이 오고 있었다.
속 태우던 어미 오리는 농장의 터줏대감 누렁이의 신세를 지기로 했다. 농장에 산 지 일곱 해, 세상 살이 모르는 것 빼고는 다 아는 누렁개였다. 이제부터는 누렁이가 막둥이의 선생님이었다.
“헤엄을 잘 치려면... 자, 이렇게 네 다리를... 아! 너는 다리가 두 개니까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거야. 바로 이렇게.”
막둥이도 두 다리를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핫둘핫둘"
누렁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막둥이는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막둥이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헉헉! 히임...드...러...꽤-액"
“뭐? 너무 힘들다고? 그러고 보니 너는 다리가 약해서 문제구나. 이번엔 날개까지 합쳐서 다시 해보자. 나처럼.”
누렁이는 자신의 네 다리를 이리저리 휘젓기 시작했다. 막둥이도 두 날개와 두 다리를 있는 힘껏 움직였다. 막둥이가 힘을 주자 꼼짝 않던 날개가 퍼덕거렸다. 지금껏 한 번도 활짝 펴본 적 없는 날개였다.
그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몸이 뜨는 것 같았다. 물 위가 아닌 하늘 위를 붕! 생전 처음 경험하는 황홀한 기분이었다. 막둥이는 이 느낌을 깊이 간직하기로 했다. 이후 막둥이는 연못 한편에서 누렁이와 함께 날갯짓 연습을 했다. 누렁이도 점점 강해지는 막둥이의 날갯짓이 마음에 들었다.
“얼굴도 이상한 애가 날개까지 퍼덕이니까 너무 웃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일삼는 막둥이를 보며 오리 형제들이 비웃었다. 소문을 통해 막둥이의 기행을 알고 있던 어미 오리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미 오리는 온몸이 젖은 채, 축 처진 날개로 돌아오는 막둥이를 조용히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막둥아, 엄마는 너를 믿어.”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미 오리도 막둥이가 보통의 오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다름에는 자신이 모르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마...나, 괜...차...“
막둥이는 어미 품에 안겨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직 한밤중이라 해도 믿을 만큼 어두운 새벽, 어디선가 "꽤-악!" 앙칼진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구슬피 우는 소리가 이어지다 천천히 사라졌다. 그날 이후 막둥이는 어미 오리를 볼 수 없었다.
어미 오리의 열 마리 새끼들은 모두 제 속도로 자라났다.
수컷 오리는 짝을 찾아 나섰고 암컷 오리는 포동포동 살을 찌웠다. 이제 곧 겨울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우리 구석에서 잠들어 있던 막둥이가 꿈을 꿨다.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사라진 엄마가 보일 것 같았다. '엄마, 어디 있어요? 보고 싶어요.' 입 밖으로 습관처럼 "꽥꽥"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 소리에 놀라 눈을 뜬 막둥이 앞에 무서운 광경이 펼쳐졌다. 농장 주인 이 씨가 살찐 오리의 발모가지를 잡아채 흔들고 있었다. 어미 오리가 사라진 새벽에 들었던 "꽤-악!" 소리와 함께였다.
생각할 새도 없이 막둥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 다리만 움직이다 이어 두 날개도 함께 퍼덕거렸다. 퍼덕, 퍼덕, 퍼덕! 몇 번의 날갯짓 만에 막둥이의 몸이 땅 위로 떠올랐다.
막둥이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놀던 마당을 지나, 하루 몇 시간 물과 씨름하던 작은 연못을 건너, 농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우거진 숲과 굽이 흐르는 강줄기와 짙푸른 산등성이를 지나 더 먼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난다! 난다! 내가 진짜 하늘을 날고 있어.'
얼마나 더 날았을까? 저만치 무지갯빛 날개를 가진 오리 한 마리가 보였다.
"누...우... 누구? 꽥꽥"
막둥이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무지갯빛 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날개를 쫙 편채 하늘을 가르는 게 전부였다.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날개가 더없이 아름다웠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쪽에서는 민둥민둥한 몸을 가진 오리가 날고 있었다. 한눈에 드러난 매끄러운 몸의 선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막둥이는 사방을 훑어보았다. 이쪽에서 또 저쪽에서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 십 마리의 오리가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맹렬하게 처절하게 그 무엇보다 매혹적으로.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았다.
막둥이는 이제 '완전한 자유'가 되었다.
스스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오리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 Rainbow at the beach ⓒ Zoltan Tasi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제13회 공유저작물 창작공모전 2차 - 글 부문 응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