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이의 가을(2021.09-2021.11)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답이 여러 개일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잔잔하게 즐거웠던 기억은 많으나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강렬한 행복은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의 비극적 순간들은 몇 번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그토록 슬픈 순간인지도 확실치 않다. 나는 인생의 희극과 비극을 모두 먹고 자랐고, 그렇게 현재의 내가 되었다.
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와 아이들과 함께 갯벌 체험을 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에서 모래를 삽으로 파고, 구멍이 뚫린 곳에 소금을 뿌리면 맛조개가 삐죽 솟을 거라고 했다. 한 시간 가량 허탕을 친 뒤 물이 밀려들어 올 무렵, 친구는 용케 맛조개 하나를 잡아 올렸다. 세 명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맛조개가 나온 구멍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중 누군가는 어른들을 따라 모종삽으로 구멍을 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잡은 조개를 만졌다. 여기에 내 아이는 없었다. 가을 물놀이에 유독 추워하던 아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파라솔 의자에 앉아 과자를 먹고 있었다.
밀물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다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갯벌에 앉아 거대한 구멍을 파고 주위로 모래성을 쌓기도 했다.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에 아이들이 모래를 단단히 매만졌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들의 허리춤까지 올라오던 구멍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마 친구 가족과 바다에 갔다. 갯벌에서 맛조개를 잡았는데 처음에는 잘 안 잡혔지만 나중에는 잘 잡혔다. 바다에서 튜브 타고 논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기억에 남는다."
집에 도착한 뒤 친구는 여덟 살 아들의 그림일기를 톡으로 보내주었다.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니 글자 쓰는 것도 가르쳐야 하고, 순전히 내 욕심이긴 하지만 영어도 배웠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가장 만들어주고 싶은 건 추억이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될 정도로 신나게 뛰어다니고, 별것 아닌 일에도 까르르 흐드러지게 웃을 수 있는, 지나고 보면 다시 떠오르는 잊지 못할 기억들. 나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들을 선물해주고 싶다. 언제라도 고이고이 꺼내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너에게도 이 순간이 즐거운 기억이길.
하나씩 하나씩 추억을 켜켜이 쌓아
네가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