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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Nov 15. 2022

쉽게 대학 가고 싶어요

고등학교 진학 문제


또 그 계절이다 싶었다. 수능이 코 앞이라서 수능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우리 학원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탓에 이 이야기를 남기기로 마음을 바꿨다.


중학교는 이맘때가 진학 문제로 나름 시끄러운 기간이다. 일찍 명확하게 진료를 결정한 친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맘때가 되어서 갑자기 고민한다. 학교에는 다양한 고등학교에서 입시 설명회를 하고, 그때마다 듣기 좋은 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문계와 특성화 고등학교 사이에서 '갑자기' 고민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몇 자 남기기로 했다. 갑자기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생기면 내가 항상 묻는 말이 있다. 


너 그 과로 30년 동안 먹고 살 자신이 있는 거지?


특성화 고등학교는 말 그대로 전문 분야를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곳이다. 만일 목표가 고등학교 졸업 후 그 분야에 바로 '취업'하는 것이라면 특성화 고등학교의 진학을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단지 그 직업으로 최소한 20~30년 산다고 했을 때 그럴 자신은 있는지 궁금하다. 중간에 바꾸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한 번 정한 학과를 돌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아주 많이 어렵다. 입시에 걸리기 때문이다. 공고를 다니던 와중에 3학년이 되어서 다른 계열로 진학을 꿈꾸게 된 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4년제 대학은 동일 계열의 학과가 아니라면 수시 지원이 불가능해서 결국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수시 지원이 안되면 남는 건 수능인데, 사탐과 과탐 과목을 특성화고에서 지도하지 않는다. 국, 영, 수가 다른 인문계 친구들에게 밀리는 것도 너무 당연한 사실이고 말이다. 나중에 마음이 절대로 바뀌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대학이 너의 선택지에 있어?


사실 이게 가장 명확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생 표에 '대학'이라는 두 글자가 있다면, 뭐가 되었든 인문계를 진학하는 게 맞다. 원래 설립 취지가 특성화고는 대학 입시가 아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인문계고다. 목표로 하는 학교가 4년제가 아니라 2년 제이고, 소위 말하는 인서울이 아니라고 해도 인문계가 맞다.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전문대학 수시 커트라인 성적표를 보여준다. 4년제가 아닌 2년제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대부분의 대학들이 인문계열보다 특성화계열이 등급이 더 높다. 무슨 소리냐면, 특성화에서 2등급을 해야 붙는 학교, 학과가 인문계에선 4등급이 붙는다. 아이들은 당연한 이 사실을 너무 모른다. 



그래도 특성화가 좀 더 시험이 쉬워서 등급 따기 쉽다고 했어요.


맞다. 특성화고는 시험이 쉽다. 1학년은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진짜는 2학년부터다. 학년이 올라가면 과목 선택들이 나뉘면서 등급을 나눌 집단의 규모가 작아진다. 그나마 인문계는 국, 영, 수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지만, 특성화고는 석차를 계열 학과끼리 묶어서 나누기도 한다. 실제 우리 학생의 경우 국어를 52명을 기준으로 나누다 보니 3등을 하고도 2등급을 받았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시험이 쉬워서 등급을 따기 쉽다고? 쉬운 경쟁이라고 이미 생각한 사람이 과연 그 50명 중에 1등을 할 수 있을까? 


내 학생 중엔 중학교 2학년부터 자신의 언니가 다니는 특성화고로 진로목표를 명확하게 한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의 선택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부정적으로 말을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명확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 학생이 고른 학교가 명문으로 분류되는 학교이기도 했지만, 그 학교를 가기 위해서 그 학생은 최선을 다해 학습을 했다. 고등학교 3년을 다니는 내내 학업에 소홀했던 순간이 없었다. 열심히 해서 3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받고도 2등급이 나오는 상황에 중간중간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해야 할 공부에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전공학과 공부에도 최선을 다하고, 학교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목표로 했던 인서울 4년제를 당당하게 해냈다. 


그래도 특성화가 취업도 쉽잖아요


험한 남학생들이 많기로 소문난 공고 학생을 하나 말해야겠다. 본인이 중심을 잘 잡는 아이이기도 하고, 애초에 대학 진학이 목표에 없는 녀석이라서 이 학생의 공고 진학을 우리는 지지했다. 학교가 거리가 있어서 학원을 오가는 게 쉽지 않았어도 열심히 했고, 평일은 학과 공부 주말은 자격증 공부로 쉬지 않고 열심히 한다. 지금까지 이 학생의 시험 성적은 당연히 좋다. 자격증도 큰 무리가 없다면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예정이다. 생각해보라. 학교 성적도 상위권에 모범적인 학교생활과 필요한 자격증을 다 갖춘 사람. 이런 학생이 취업도 성공적으로 해내는 거다. 


입시 강사여서 일방적으로 어떤 직업은 좋고, 어떤 학교는 나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어정쩡한 마음으로. 그저 공부하기 싫어서. 이렇게 하면 조금 더 쉽다니까. 그런 이유들로 특성화고 진학을 택하지 말라는 거다. 그건 특성화고에서 꿈을 꾸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모욕이다. 우리 집안은 3대째 공업을 한다. 할아버지, 큰아버지들과 내 아버지, 나의 사촌오빠들까지. 공대, 공고 출신자들이 집안에 많다. 그들 모두가 다른 것은 몰라도 수학은 누구보다 잘한다. 공학은 수학이 없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공부하기 싫어서 공고를 가겠다고 하는 녀석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 엔지니어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 녀석들인지 화가 난다.


대학을 쉽게 가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내 친구 L은 가정 형편으로 인문계 진학은 할 수 없었다. 특성화고를 다니는 동안 L은 학생 회장을 맡아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당시엔 특성화에서 4년제를 진학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었고, 열심히 살았음에도 L은 목표로 하던 상위권 대학은 가지 못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해서도 L은 멈추지 않았다. 학과 생활을 열심히 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새로운 영어 스터디 동아리도 만들어 활동했다. 그리고 방학 때 정말이지 편입 준비를 엄청 열심히 했다. L은 자신이 지원한 6개 대학에 모두 합격했다. 그때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보다 성공적인 편입 사례는 듣지를 못했다. L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인지는 이 일화로 설명하겠다. 대학에서 단기로 반년 정도 캐나다에 연수를 갈 기회를 L이 잡았었다. 돌아온 L은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도 마스터해서 돌아왔다. 캐나다에 나가기 전에 L은 일본어를 전혀 모르던 친구였다. 기숙사 방에 있는 동안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울 요량으로 그렇게 공부했단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독하기로는 L만 한 사람이 없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과연 너는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세상에 쉬운 길은 없다.
너만 똑똑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멍청해서 그 쉬운 길을 몰라 못 고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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