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가 눕다가 울다가
몇 년 전 일이다. 대학병원 진료를 앞두고 며칠간 잠을 설쳤다. 어른이 돼서 주사가 무서워 불면에 시달릴 줄 몰랐다. 허리 치료를 위해 맞게 된 ‘신경 주사’가 궁금해 인터넷에 검색했다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몸 안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다나. 태어나 처음 겪는 고통에 주사 맞다 엉엉 울어버렸다는, 다 큰 어른들의 진땀 나는 고백이 수두룩했다. 어떤 고통이길래 통증에 이골 난 척추 환자들이 벌벌 떠는 걸까? 고깟 주사라고 생각했는데, 걱정에 잠이 달아났다.
애석하게도 추간판 탈출 진단을 받은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4번 5번 척추 사이 디스크가 튀어나와 신경을 짓누르고 있단다. 한쪽 엄지발가락의 감각이 조금 둔하다 싶었는데 의사는 그게 신경 마비 증상이라고 했다(어느 투병 동지의 표현으론 발등에 밀가루 반죽을 올려놓은 느낌이라고). 허리 디스크로 고생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수술’이라는 벼랑 끝에 몰린 척추 환자가 마지막으로 겪는 증상이 ‘마비’다. 의사는 수술 시기를 놓치면 후회할 거라 했다(하반신 마비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일주일 간격으로 주사를 세 번 맞기로 했고 차도가 없으면 남은 방법은 수술대에 오르는 것뿐이란다.
첫 번째 주사를 맞던 날,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 9시까지 병원에 가야 하는데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과 겹쳐 택시를 부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어찌어찌 정형외과 처치실에 도착했다. 복도 대기 의자는 만석이었다. 줄줄이 앉아 있는 환자 중에 내가 제일 젊었다. 보호자들마저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라 자리가 비어도 선뜻 차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서서 견딜 자신도 없어서 결국 사이에 끼어 앉았다.
사방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KTX 첫차 타고 왔어요. 부산에서요.”
“저는 어제 서울에 도착해 모텔에서 하룻밤 잤어요.”
고작 택시로 삼십 분 거리를 오면서 짜증을 품었던 게 민망했다. 각지에서 온 척추 환자들은 처음 본 이와 친근히 대화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통증의 연대’라 해야 할까(조금 거창한가). 척추의 고통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달래지는 기분이었다.
주책맞게, 마음이 뜨근해지는데 어디선가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저는 신경 주사가 처음인데요. 얼마나 아픈가요?”
잊어먹었던 두려움이 발딱, 고개를 쳐들었다. 견딜만하다고 토닥이는 사람도 있고 너무 아파서 차라리 수술이 낫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들리는 말에 따라 심장이 내려앉았다가 제자리를 찾았다가 했다.
9시가 됐다. 통증 동지들이 하나둘 처치실로 들어갔다. 어떤 기준으로 순번이 정해진 건지 알 수 없었고 내 차례는 쉽게 오지 않았다(나이순이었을까). 이름이 불린 사람들이 끌려 들어갈 때마다 자동문이 열리고 닫혔다. 나처럼 처음 온 사람들은 그때마다 목을 빼고 처치실 안쪽을 엿봤는데 줄줄이 늘어선 침대가 특히 신경 쓰였다. 주사를 맞고 난 후에 다리 힘이 풀릴 수 있어 누워 상태를 봐야 한단다. 시간이 흘러 내 이름이 불렸을 땐 대기 의자에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환자로 꽉 찼던 침대도 어느새 절반이 비었다. 고된 과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자리였다.
안에 들어가 보니 침대가 늘어선 공간은 또 다른 대기실이더라. 누군가 앓는 소릴 내며 누워 있는 침대를 지나 커튼 앞, 대기 의자에 앉았다. 그 너머가 진짜 처치실이었다. 커튼 저편에서 ‘아파요!’라는, 비명에 가까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기 의자에 나란히 앉아 눈인사를 나눴던 아주머니의 소리였다. 허옇게 질린 내게, 침대에 앉아 쉬던 노인이 눈을 맞추며 말을 걸어줬다.
“아휴, 괜찮어. 저 정도로 아프진 않어.”
말씀 감사하다고 말해야 했는데 입이 굳어 겨우 미소만 지었다.
커튼이 열렸다. 이제 진짜 내 차례였다. 주사를 맞은 아주머니가 흐느끼며 침대로 들려 가는 걸(의료진이 양쪽에서 부축) 곁눈질하며 주사실에 들어섰다. 아주머니의 통곡을 받아낸, 긴 의자 위에 엎드려 누웠다. 오늘도 많은 환자를 울렸을 의사가 말했다.
“따끔하긴 하지만 그렇게 아프진 않을 거예요.”
너무 아프면 이야기하라는, 의사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꺼운 바늘이 쑤욱 피부를 뚫고 들어와 허리 안쪽 어딘가에 닿았다(아마도 신경이겠지). 퉁! 의지와 상관없이 한쪽 다리가 튕겨 올랐다. 이어 주사약이 들어가면서 뻐근한 통증이 발끝까지 번졌다. 모두 처음 겪는 불쾌한 감각이었다. 나는 신음을 삼키는 편이라, 약이 다 들어갈 때까지 처치실은 고요했다. 젖은 이마를 젖은 손바닥으로 닦으며 주춤주춤 일어서는데 의사가 조금 놀란 듯 물었다.
“안 아프셨어요?”
조금 전, 아프지 않을 거라던 때보다 인간적인 말투였다.
나도 앞의 아주머니처럼 침대에 눕혀졌다. 허탈하기도 후련하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떨었을까. 며칠간 시달린 두려움에 비하면 참 별것 아닌 순간이었다. 끔찍했던 허리 통증과 비교해도 정말 별것 아닌 고통이었다(…그러나 두 번째 주사 때도 벌벌 떨었음). 집에 와선 그간 못 잔 잠을 몰아 자는 데 남은 하루를 다 썼다. 다행히 주사가 통증에 효과를 보였고 수술도 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운 좋은 경우가 드물다고 하니 그저 감사해야지.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겠지(비록 다른 질환이 이어져 여태껏 고통받고 있지만 어쨌든).
돌이켜보니 나는 주사의 아픔보단 체면이 상할까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얼마나 아플지 알 수 없으니, 나도 남들처럼 비명을 지르며 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나를 상상하니 너무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른도 너무 아프면 울 수 있는 건데 그땐 몰랐다(통증에 고통받는 환자들에겐 배부른 말로 들리겠지). 그날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일어나지 않는 순간을 걱정하며 보낸 시간이 아까워 앞으론 그러지 말자고 다짐도 했건만, 인간은 어째 이럴까. 좀처럼 변하질 않는다. 오늘의 나는 여전히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도 남의 통증 앞에서 매정하게 굴지 않기로 마음먹은 건 잊지 않았다. 그날 괜찮다고, 주사가 별로 아프지 않다고 말해주신 어르신과 처치실 앞 복도에서 서로를 토닥여 주던 통증 동지들이 가르쳐주셨다. 아픈 이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다정하라고. 그들의 다정 덕에 그날을 수월히 지나올 수 있었다.
✔덧. 신경 주사는 근본적 치료법이 아니라 잠시 통증을 줄여 운동할 시간을 벌어주는 방법이다. 주사의 고통은 사람에 따라, 증상에 따라, 주사를 놓는 의사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훨씬 아팠단 사람도 있고 아무 느낌 없었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복불복이다(인생 다 그렇지). 하지만 허리 디스크가 튀어나오거나 터지면 엄청 아프다(말해 뭐해). 굳이 겪을 필요 없는 고통이니 제발 허리를 폅시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맙시다. 부디 그대는 이런 고생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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