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걷다 보니 얻은 것들

쓰다가 눕다가 울다가

by 복희

거실 창 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볕이 따땃하다.

“아, 봄이구나.” 했다(나이가 드니 자꾸 혼잣말을 합니다). 매일 아침, 거창한 의식 치르듯(…아니고 잠 깨려고) 창문에 붙어 멍때려 온 시간이 무의미하게도 봄의 한복판인 이제야 계절을 느낀다. 참으로 둔하다.

봄만큼 걷기 좋은 계절이 있을까. 찬 바람에 움츠리지 않아도 되고, 옷 무게에 눌리지 않으며, 뼈마디가 굳어 삐걱대지 않는 계절. 그러니 오늘은 나가서 걷기로 했다(나름 대단한 결심이다). 요즘의 봄은 후두두둑, 쏟아지고 끝나는 소나기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가뜩이나 짧던 것이 더 짧아짐). 게으름피우다가 아까운 계절을 올해도 놓쳐버릴 뻔했다.

봄날, 일광욕 중인 우리집 고양이 영희


부끄럽지만 오랜만의 외출이다(…한 달 만인가). 잠깐의 산책도 외출이냐고 혀를 차는 지인도 있다. 야박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앞에 매여 사는 집구석 노동자가(심지어 나는 척추 환자라고) 단 십 분이라도 일부러 나가 걸었으면 ‘외출’로 쳐줘야지.


생각할수록 억울하다. 누워 앓다 일어나 일하고, 일하다 다시 누워 앓아야 했던, 나름 비루하고 바쁜 삶이었다. 틈틈이 궂은날이 이어진 탓에 허접한 몸뚱이는 또 투병 모드였다. 비가 오려나 생각하기 무섭게 어깨에 염증이 자리 잡더라. 염증이란 것은 고리대금업자 같아서 몸 어디든 똬릴 틀면 쉽게 쫓아낼 수 없다. 며칠이건 몇 주건, 이자까지 탈탈 내어주지 않으면 떠나지 않는 고약한 녀석이다(비가 이틀 왔으면 이틀만 아파야지 한 달이나 아플 건 뭐람).

애써 채비하지 않고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운동화만 신고 나왔다(대신 추레함을 감출 겸, 바이러스도 피할 겸 마스크를 착용함). 허리는 꼿꼿이 펴고 고개도 빳빳이 쳐들고 양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걸었다. 잠깐을 걷더라도 최대의 운동 효과를 얻기 위해 제 딴에는 최선을 다했단 이야기다.

작업방에 앉았을 땐 귓구녕을 날카롭게 후비던 동네 어린애들 웃음소리가 밖에선 그저 쏟아지는 햇볕처럼, 불어오는 바람처럼 자연의 일부 같다(그나저나 왜 어린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화할까)

공식적으로 허리 아픈 사람이 되었을 때(추간판 탈출 진단을 받았을 때) 내게 걷는 것은 노동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뼈와 근육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도 힘들었고, 목적 없이 여유롭게 걸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에 그저 걷기만 하는 시간이 어색했다.

무거운 가방 없이 맨몸으로 집에서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과정이 낯설었다. 척추가 결딴나기 전까지는 목적지가 있을 때만 걸었다. 방송국, 카페(주로 업무 관련 만남), 프로덕션, 작업실 따위가 주 목적지였다. 자동차나 지하철에서 내려서, 또는 집에서 목적지까지 걷는 게 더 가까운 거리여서 걸었다. 업무라는 목적지 없이 걷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이렇게 적어 놓으니까 이것 또한 이상한 삶이네).

아무튼, 걷는 것 말고는 통증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척추 환자는 어색하든 낯설든 살기 위해 그저 걸어야 했다.

처음엔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딱 세 곡만 버티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음먹었다가 다섯 곡, 여섯 곡, 열 곡, 목표를 늘려가며 걸었다. 걷는 게 익숙해지자 슬슬 시간이 아까워 오디오북을 듣기도 하고 팟캐스트를 듣기도 했다.

걷기 4년 차인 지금은 그냥 걷기만 하는 날이 더 잦다. 글이 풀리지 않을 때 걸으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더라. 애써 고민하지 않아도 뇌가 자극받아 활발히 아이디어를 쏟아낸다(영감을 얻기 위해 걷는 작가들도 많다고 함). 이제는 귀에 뭘 흘려 넣어 봤자 집에 도착해 이어폰을 뺄 때쯤이면 뭘 들으며 왔는지(듣긴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구석구석 동네 골목길을 살펴볼 줄 알게 된 것도 걸으며 얻은, 꽤 괜찮은 수확이다. 이사 와서 몇 년간은 동네를 전혀 몰랐다. 주택 밀집 지역인 우리 동네에는 골목이 많다. 비슷비슷한 집들이 줄지어 있어 이 골목이 저 골목 같았다. 지도 앱 없이는 길을 잃을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켜지 않아도 골목을 구분할 수 있다(이게 뭐라고 뿌듯하담). 조금 늦었지만, 동네를 알게 된 거다. 알고 나니까 보인다. 비슷해 보였던 집들은 대문도 계단도 지붕도 제각각이더라. 마당에 심어진 나무의 종류도 뻗어나간 가지의 방향도 그 끝에 핀 꽃들도 때맞춰 열리는 열매도 다 달랐다.

집 가까운 곳에 규모는 작지만, 매력적인 책방이 세 곳이나 있다. 유명인이 다녀간 바람에 웨이팅이 더 길어졌다는 냉면집도 있다(맛있더라). 간판이 없어도 손님이 줄 잇는 빵집, 저렴하지만 실력은 대단한 미용실, 닳디 닳은 칼날이 세월을 알려주는 순대 장인의 가게, 배달하지 않는 40년 전통의 짬뽕집도 발견했다. 배달 앱만 들여다보면 평생 몰랐을 보석 같은 가게들이다(오늘은 간판 없는 빵집에 들러 달콤한 밤이 실하게 들어있는 밤식빵을 사 옴).

도시의 예쁨도 깨달았다. 아름다운 풍경이란 멀리 떠나야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우리가 사는 도시도 높은 건물 숲 사이사이 꽃잎이 아름답게 흘러내리는 곳 천지다.

대로변에, 초등학교 담장에, 작은 도서관 마당에 꽃나무가 화려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벚꽃 나무가 봄에만 유독 눈부신 줄 알았다. 꽃을 다 떨군 가지에는 푸르른 잎사귀가 가득 채워진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대로변을 걷다 보면 피로했던 두 눈이 깨끗이 씻기는 기분이다(실제 공기는 깨끗하다 할 수 없지만). 그 가지 위로 펼쳐진 하늘은 매일 새로운 모습이어서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지루함 없이 아름답다. 같은 동네에서 8년을 살았는데 4년간은 보지 못한 풍경이다(아니, 보지 않은 풍경이겠지).

나에게 걷기란 누워 앓는 사이 도망가 버린 근육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인심 좋은 시장에 다녀온 듯 덤으로 얻게 된 것이 너무 많다. 걷기가 척추 문제뿐 아니라 마음의 통증에도 효과가 좋더란 사실을 여기저기, 사방팔방, 동네방네 알리고 싶다(함께 합시다)!




✔덧. 지긋지긋했던 겨울도 결국 물러날 때가 온다. 알면서도, 매해 겪었으면서도 추위에 허덕이고 찬바람에 지치면 그 당연한 사실을 잊어먹는다(특히 올겨울은 매우 심란했지요). 계절이 바뀌어도 마음은 여전히 겨울인 그대, 시린 바람에 상처 입은 그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 주저앉은 당신께 전하고 싶다. (흔해 빠진 말일지라도 해야겠다) 조금만 더 견디시라. 기어이 봄은 오고야 마니까. 우리의 삶도 당연히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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