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가 눕다가 울다가
택배가 왔다. 현관에 들여놓은 상자에 감자가 10kg이나 들어 있다. 송장엔 ‘S시 농협’이라고 적혀 있을 뿐 보낸 사람의 이름이 없다. 그렇지만 누구의 소행인지 안다. 그 도시에 나와 연고가 있는 이는 그녀, 한 사람뿐이라.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자가 왔다고. 그런데 너무 많다고. 나의 푸념에 전화기 너머에선 화통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울까지 택배로 보내는 건데 적당히 오천 원어치쯤 보내겠니, 되지도 않는 소릴 하는구나.”
유쾌한 목소리에 할 말을 잃었다.
상자 속 감자는 알알이 굵기도 굵어서 어떤 것은 내 주먹 네 개를 합친 것보다 크다. 이렇게 큰 감자를 손에 쥐어 본 적이 있었나. 그녀는 마치, 흙 묻은 감자를 쓰다듬는 나를 바로 옆에서 보듯 말한다.
“감자가 좀 크지? 큰 감자가 맛있단다. 삶아 먹고 구워 먹고 튀겨 먹고 강판에 갈아서 부쳐 먹어도 맛있을 거란다. 일단 몇 개 깎아서 냄비에 소금 반 숟갈, 설탕 한 숟갈을 같이 넣고 물을 자박하게 채우렴.”
전화 너머 친절한 목소리가 감자 삶는 법을 읊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머리를 굴려봤자 이미 도착한 감자를 어찌할 수 없는 노릇. 항의를 중단하고 전화를 끊었다.
흙을 대충 털어낸 감자 한 알을 손에 쥐고 쪼그려 앉아 상자를 내려다본다. 마트에서 감자 한 봉지를 사도 잔뜩 싹을 틔우고 결국 썩혀 버리는 나 같은 것에게 어쩌라고 저 많은 감자를 보내줬을까. 우리 집에 입은 고작 둘 뿐인데(고양이는 감자를 먹지 않으니 제외해야 한다). 통증으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아침부터 이 상태다. 불쾌한 통증이 머리를 옭아매는데 견디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두통은 긴 세월 시달려 온 나의 군손님이다. 어린이일 때부터 그랬으니 척추 통증보다 훨씬 오래된 불행이다. 몸이, 혹은 마음이 뭔가에 지독히 시달릴 때 불쑥 찾아오는데 며칠이건 몇 주건 성실히 앓아야만 사라진다(이때는 진통제도 소용없다). 속수무책인 면에선 척추의 아픔과 비슷한가.
묵직한 통증을 머리에 이고, 감자를 몇 개 꺼내 싱크대 앞에 섰다. 물로 씻어낸 감자는 껍질을 깎아 두고 냄비를 꺼냈다. 홀린 듯 그녀가 시킨 대로 순순히 감자를 삶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여태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 감자가 든 냄비를 불 위에 올려두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자니 어젯밤에 전해 들은 어떤 죽음이 떠오른다. 잊고 지내던, 잊고 싶었던 그 이름은 밤새 머릿속을 소란하게 하더니 기어이 두통까지 불러다 주었다.
그의 마지막은 쓸쓸했던 모양이다. 집에서 홀로 숨을 거둔 듯하다고, 전화로 부고를 전해준 선배가 울먹이며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어찌해야 하지. 나도 울어야 하나.
사실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놀라서도 황망해서도 아니라고, 나는 그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의 주저함을 오해해서 외려 위로하려 드는 친절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너도 알다시피 정말 훌륭한 분이었잖니? 그렇게 보내면 안 되는 건데. 참담하다. 너무 참담해.”
고인과의 추억을 주절주절 꺼내놓던 선배는 이어지는 침묵이 뒤늦게 이상했던지 어색하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미안했다. 해줄 수 있는 게 침묵뿐이라.
내 기억 속 고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높은 자리의 사람이었다. 나는 어린 작가였고. 오래전 그날, 그는 아무도 없는 복도에 나를 세워두고 빤히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막내 작가는 무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획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 아니지, 얘야. 그런 건 좀 못해도 괜찮아. 아저씨 생각은 그렇단다. 막내 작가는 무조건 잘 웃어야 해. 술자리에서도 회의실에서도 무조건 분위기를 띄워야 해. 그게 늘 우선이어야 해.”
PD 출신의 그는 평이 좋은 임원이었다. 한참 어린 후배들과도 스스럼없이 우스갯소릴 주고받으며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고 다니던 어른이었다. ‘막내 작가’의 의무에 대해 조언하던 그때는 웃지 않았지만.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지금보다 당차고 훨씬 경솔한 편이었지만 그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무서웠던가. 놀랐던가. 당황했던가. 오래된 일이라 다른 감정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턱 끝까지 차오르던 수치심은 또렷이 남았다.
그날의 말들이 내가 고인과 나눈 유일한 대화다(대화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없어서 식당이든 술자리든 회의실 탁자에서든 마주 앉아 웃을 기회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회사를 떠났다. 방송국에서 밥 먹듯 일어나는 파벌 전쟁의 패자였다. 그제야 그날의 조언이 화풀이였음을 알았다. 그가 분노에 차 있을 때 하필 눈에 띈 만만한 이가 나였는가 보다.
냄비의 물이 거의 졸아들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거품 사이로 냄비가 바닥을 드러내는데도 멍하니 보기만 하다가 옅은 탄내에 놀라 황급히 불을 껐다. 생각이 사방으로 흩어져, 눈앞에서 냄비를 태울 뻔했다. 냄비 바닥이 조금 그을렸지만 감자는 다행히 무사하다. 개중 작은 것 하나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가 앉았다. 설탕이 배어든 감자에서 단내가 났다.
포슬포슬, 잘 삶아진 감자를 쳐다보며 앉아 있다. 선뜻 젓가락을 쥔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익은 감자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픈데, 그런 내가 싫은 것은 또 무슨 지랄인지.
나는, 십여 년 전 방송국 복도에 여태껏 서 있는 모양이다. 그때도 나는 나를 탓했다. 왜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을까, 그런 말을 들어 마땅한 무언가를 하고도 내가 잊은 건 아닐까, 따위의 죄책감이 들어 내가 싫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내가 싫다. 낡은 상처 하나를 놓지 못해서 추모하지 못하는 나의 옹졸함이 싫다.
식어가는 감자를 바라만 보다가 겨우 젓가락을 움직였다. 반으로 갈라 속살을 여니 벌어진 사이에서 김이 살짝 피어오른다. 귀퉁이를 조금 떼어내 입에 넣었다. 따뜻하다. 달다. 맛있다. 제철 감자의 맛이 이런 거구나. 이렇게 좋은 거구나. 그녀는 이 좋은 것을 내 입에 넣어주고 싶었던 거구나.
천천히, 그러나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는 사과받고 싶었던 것 같다고. 그 옛날, 나를 모욕해서 그가 얻어간 것이 무언지 아직도 모르겠다. 대답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 사과해 줄 사람 역시 이제 세상에 없다. 그런 마땅한 생각을 이제야 한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무엇을 위해 종일 머리를 싸맸는지. 미련한 내가 과거의 나를 미워하느라 몸과 마음을 괴롭게 할 때, 멀리 다른 도시에선 맛있는 것 앞에서 나를 떠올리는 친구가 있구나.
뱉지 못한 말이 서러워 아무도 없는 복도 끝에 오도카니 서 있던 그날의 나는 지우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감자를 먹었다. 남김없이 먹었다. 감자가 이겼다.
✔덧. 여름이 막 시작되던 날의 이야기를 묵혀두었다가 이번에 글로 썼다. 앞서 올린 글들을 읽어 보니 몸 아픈 이야기만 쓴 것 같더라. 너무 징징댄 것 같아 이번엔 그러지 말아야지 했으나, 어떤 사람에겐 마음 아프게 읽힐 수 있겠다. 아는 이가 읽고 상처받을까 두려워 문장마다 글자마다 조심스러웠다. 그런데도 쓰고 싶었다. 쓰고 나니 후련하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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